토론:예산읍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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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8월 7일 (금) 20:51 판 (새 문서: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원래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지에 있던 것을 1914년에 일본인이 몰래 내가려다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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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원래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지에 있던 것을 1914년에 일본인이 몰래 내가려다가 보덕사 주지 김관응 스님의 항의로 다시 회수하여 군청 내에 보관하게 되었다. 지대석은 4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으며, 한 변의 길이가 210cm이다. 기단면석이나 탑신에는 우주, 탱주 등이 조각되어 있지 않으며, 상대갑석에는 탑신괴임이 만들어져 있다. 탑신과 지붕돌은 각각 별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래는 5층 석탑이었던 것이 현재 3층만 남아 있어 1층과 2, 3층은 급격하게 작아지고 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하고 있으며, 처마는 비교적 날렵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다. 상층부는 복발과 노반만이 남아있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원래 인근의 가야사지에 있었으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한 일본인이 몰래 가져가려 하였으나, 당시 보덕사 주지였던 김관응 스님이 항의하여 돌려 받았다고 한다. 이후 예산군청에서 보관하다가 2000년에 보덕사로 옮겼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둥근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맨 아래 1층 몸돌에 비해 2, 3층의 몸돌이 급격하게 작아지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5층석탑이었던 것이 훼손되어 3층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 ‘~ 사리를 ~’
    • ‘이 탑은 2층의 기단,’ → ‘이탑은 지대석 위에 1단의 기단을 놓고’
    • ‘맨 아래 1층 몸돌에 비해 2, 3층의 몸돌이 급격하게 작아지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5층석탑이었던 것이 훼손되어 3층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 삭제 검토, 고려대 석탑 중 체감률이 급격히 변하는 사례 다수 있으며, 다른 부재가 추가 확인되기 전에는 5층 석탑일거라는 추정은 어려움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탑은 부처의 사리 즉 유골을 모신 건축물로, 불상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자 그 자체가 불심 혹은 부처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 이 삼층석탑은 원래 인근 가야사지에 있었으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914년(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몰래 가져가려 하였으나, 당시 보덕사 주지였던 김관용 스님이 찾아왔다 한다. 이후 예산군청에서 보관하다가 2000년에 보덕사로 옮겼다.
    • 삼층석탑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맨 꼭대기에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삭제해도 무관할 것으로 생각됨. 부기해야 한다면 추가 설명 개념으로 아래쪽에 간략히 서술하며, ‘불탑’ 보다는 ‘석탑’의 정의를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함.
    •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삭제
    • 이 탑은 2층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둥근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맨 아래 1층 몸돌에 비해 2, 3층의 몸돌이 급격하게 작아지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5층석탑이었던 것이 훼손되어 3층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 탑은 이중기단(이층의 기단)이 아닌 단층기단이며, 지표면 위에 있는 네 장의 석재는 지대석임. 원래 층수는 3층으로 추정됨. ‘단층기단’이라는 점이나 옥개받침 수, 치석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으로 판단됨.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사리, 즉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원래 인근의 가야사지에 있었으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한 일본인이 몰래 가져가려 하였으나, 당시 보덕사 주지였던 김관응 스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후 예산군청에서 보관하다가 2000년에 보덕사로 옮겼다.

이 탑은 지대석 위에 단층의 기단을 놓았으며,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둥근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