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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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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서원
도암서원, 서원연합회
대표명칭 도암 서원
한자 道巖 書院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819
지정(등록) 종목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



해설문

국문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의 제사를 위해 설립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도암 서원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13년에 김질(1496∼1555)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집터에다 세운 서원이다. 원래 이곳은 ‘영모당’이라는 사당이었는데, 영모당 김질을 중심으로 은송당 김경철, 현무재 김익철 등의 위패*를 좌우로 안치하면서 서원이 되었다. 도암 서원은 1868년 조선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렸다가 1946년에 복원하였다. 이곳에는 효자로 책봉된 김질의 공훈 기록 녹권과 녹권을 보관하는 봉안각, 효행을 알리는 정려, 하마비* 등이 있다. 서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강학 공간과 시묘 공간을 잘 갖추고 있어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위패: 죽은 이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
  • 하마비: 선현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로 세운 비석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1613년 세워진 이 서원은 김질(1496-1555, 호 영모당)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집터에 건립한 것이다.

1835년에 증손 김경철을 추가로 배향하고, 1857년에 김경철의 동생 김익철을 또 추가로 배향하였으며,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렸다가 1882년에 복설되었다.

김질은 1546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로 책봉하는 공훈 기록 녹권을 받았다. 김경철은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켰고, 김익철은 임진왜란 때에는 왕을 호종하고 병자호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킨 바 있다.

경내에는 영모당을 비롯해 김질의 공훈 기록 녹권이 보관되어 있는 봉안각, 효행을 알리는 효자각, 이 지역의 서원 내에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마비 등이 있다. 2006년에는 김질의 선조이자 익원공파의 파조인 김사형(1341-1407)의 부조묘를 세웠다.


  • 복원 시점이 다 달라 확인 필요함. -> 우선 가장 이른 시기로 제시함 (1882년 / 1936년 / 1946년)


참고 자료

-> 김질 김익철, 김경철 관계 (이곳에는 김질(金質)을 배향하여 오다가 그의 증손인 김익철(金益哲)과 그의 아우인 김경철(金景哲)을 1847(헌종 13)에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882년(고종 19)에 복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