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정
석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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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석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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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灘亭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율계리 341(고창천길 174-10) |
지정(등록) 종목 |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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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석탄정'은 조선 선조 때인 1581년에 석탄 유운이 낙향하여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지금의 석탄정은 1830년에 다시 지었으며, 이후 수차례의 홍수에도 유실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석탄정은 당시 문장가들이 이곳에서 강학을 하고 풍월을 읊는 게 소원일 정도로 유명하였다. 청렴결백한 판서로 이름 난 서헌순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송병선의 글을 기록한 나무판이 걸려 있다. 더불어 순국지사 송병순과 조선 마지막 성리학자 전우의 시를 새긴 나무판도 걸려 있다.
석탄정의 동쪽과 서쪽에 ‘상풍루’와 ‘영월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석탄정은 마루 가운데 칸의 방 뒤에다 한 단계 높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정자의 평면 형태와 구조는 호남 지방 정자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1581년 류운(1547-?, 호 석탄)이 벼슬을 거절하고 낙향한 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30년에 중수된 후 여러 차례의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건물은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두른 형태로, 출입구의 반대편 마루는 층을 높여 그 아래에 방으로 연결되는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안쪽에는 서헌순, 송병선, 전우 등 등 당대 문장가들의 글을 기록한 나무 판들이 많이 걸려 있다. 뒤편에는 사방이 트인 누각 상풍루가 있다.
류운은 뜰에는 반송을 심고 정자 앞 냇가에는 낚시터를 만들어 강학을 하면서도 풍류를 즐겨 스스로 ‘석탄’이라고 호를 지었다고 한다. 정자의 이름은 류운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참고 자료
- 南道 정자기행(204)-조대서 풍월을 읊고 고창 석탄정(石灘亭), 한국매일, 2012.9.28.
http://hankukmail.com/newshome/print_paper.php?number=17071 -> 기본 정보 확인 가능
- 고창문화원 -> 사진 출처
http://www.gcculture.com/php/board.php?board=gc22&page=1&command=body&no=73
- 백산철학관,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pns5044/888 -> 누각 세부 사진 확인
- 편액의 숨결을 찾아서 <13> 유명인들의 편액이 즐비한 석탄정, 새전북신문, 2012.10.8.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494 -> 송헌순이 쓴 석탄정중수기에는 유운이 서울에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석탄(石灘) 위에 누워 있으면서 이곳 자연풍광에 흥취되어 자호를 석탄이라 하였고, 또 정자 이름도 석탄정이라고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