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화동서원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7월 23일 (목) 02:59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화동서원.jpg |사진출처=[http://www.seowonstay.com/bbs/board.php?bo_table=slist&wr_id=857&page 화동서원], 서원연합회. |대...)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화동 서원
화동서원, 서원연합회.
대표명칭 화동 서원
한자 華東 書院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734-1
지정(등록) 종목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



해설문

국문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의 제사를 위해 설립한 사설 교육 기관이다. 화동 서원은 정유년(1957)에 광산 김씨 종친회에서 세운 것으로, 본래는 문중의 사당이었다. 사당인 경모재에는 고려의 문신 문안공 김양감*을 중심으로 전리판서* 김인우*, 사은 김승길, 매은 김오행 등 4인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강당인 정모재는 1898년 이전에 지은 초가 건물을 1912년에 서재 명성재와 함께 다시 지은 것이다.

이곳에는 정모재를 중심으로 좌우 동편의 치경재와 서편의 명성재, 내삼문 안의 사당인 교동사, 교동사 뒤의 묘 등이 있다. 이는 전형적인 서원의 건축 형태이며, 중건 기록이 남아 있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고려 후기 광산 김씨 4대의 학문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김양감: 고려 문종 당시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으며, 1074년에 중국 송나라에 사은사로 가 태학과 태묘 등을 그려오는 등 유학을 고려 사회에 소개하였다.
  • 전리판서: 고려 시대 전리사의 정3품 벼슬로 조선 시대의 이조판서와 같다.
  • 김인우: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여 일등 공신이 되었으나 이후 아우 김갑우의 일로 장사 감무로 좌천되었다. 장사는 고창군 대산·성송·공음·상하면을 포함한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행정구역이며, 감무는 이곳에 파견된 지방 관리
  • 위패: 죽은 이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곳은 광산 김씨 종친회에서 세운 것으로, 문중의 사당에서 시작되었다.

강당인 정모재는 1912년에 서재와 함께 현재 모습으로 다시 지었고, 1957년에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다시 세워 김양감, 김인우, 김승길, 김오행 등 광산 김씨 가문 출신으로 고려에 충절을 바친 4명의 위패를 모셨다.

경내에는 강당인 정모재를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있다. 이는 서원에서 취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형 배치이다.

이곳에는 서원의 중건 기록이 남아 있는 『화동서원지』가 전해지고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고려 후기 광산 김씨 4대의 학문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