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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겸(마티아) 순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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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겸(마티아) 순교지
최여겸(마티아)순교지, 굿뉴스, 천주교구
대표명칭 최여겸(마티아) 순교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167
지정(등록) 종목 향토문화유산 제1호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



해설문

국문

최여겸은 1763년 전라도 무장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이다. 그는 전라도 진산(지금은 충청남도 금산군) 땅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웠다.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간 뒤에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면서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고향인 무장으로 돌아온 그는 전라도 서남 해안에서 눈부시게 활동하여 28명을 전도하였다.

최여겸은 신유박해 당시인 1801년 음력 4월 13일에 충청도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되었다. 다시 전주 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이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중죄인은 고향에서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는 ‘해읍정법’에 따라 1801년 음력 7월 19일에 무장의 개갑 장터*에서 참수를 당하였다. 개갑 장터는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이며, 전라도 선교의 거점이자 천주교 순교의 하한선이라는 종교사적 의미를 갖는다.

최여겸은 2014년에 순교자 윤지충과 더불어 123위에 포함돼 시복시성*이 되었다.


  • 개갑 장터: 최여겸〔마티아〕이 천주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던 곳으로, 규모가 큰 우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김질이라는 선비가 추운 겨울의 눈길을 헤치며 제물을 구하러 가는 모습에 감동한 무장 현감이 그를 위해 장을 여니 바로 ‘개갑장’이다.
  • 시복시성: 가톨릭에서 타계한 교인 가운데 덕행이 뛰어난 이를 복자품이나 성인품으로 추대하는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최여겸(1763-1801)의 처형지이다.

무장 지역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최여겸은 전라도 진산(지금은 충청남도 금산군) 땅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웠다. 결혼 후에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되었으며, 이후 고향 무장으로 돌아와 28명을 전도하였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었고, 무장과 전주, 한양까지 압송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신앙을 꺾지 않아 고향인 무장에서 가장 번화했던 개갑 장터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최여겸은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어 복자품으로 추대되었다.

전주교구와 고창군은 2002년부터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성역화하는 작업을 시작해 2013년에 이곳에서 순교성지 축복 미사를 드렸다. 지금은 순교 현양탑과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상징물들은 최여겸의 활동을 담은 모자이크 색유리화로 장식되어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