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검무
진주검무 Jinju Geommu (Sword Dance of Ji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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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주검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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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inju Geommu (Sword Dance of Jinju) |
한자 | 晋州劍舞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
지정(등록)일 | 1967년 1월 16일 |
분류 | 무형문화재/전통 공연·예술/춤 |
웹사이트 | 진주검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진주검무는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여성 칼춤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진주검무는 진주 교방* 출신의 최순이가 고종 때 궁중 무희로 활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관청의 예기들에게 전승한 것이다. 8명이 검무를 추었기 때문에 ‘진주 팔검무’라고도 한다.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진주검무는 피리, 해금, 장구, 북 등의 장단에 맞추어 느린염불타령, 빠른타령으로 진행된다. 검무를 출 때는 궁녀의 평상복에 전복**과 전립***을 착용하고, 손목에는 색동 한삼****을 낀다. 진주검무의 춤사위에는 한삼평사위, 배맞추기, 쌍어리, 숙인사위, 뿌릴사위, 결삼사위, 낙삼사위, 맨손입춤사위, 방석돌이(깍지떼기), 맨손칼사위, 자락사위, 앉은칼사위, 위엄사위, 삼진삼퇴, 연풍대가 있다.
진주검무는 궁중의 잔치에서 추었던 검무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다양한 춤동작, 활기가 있으면서도 우아한 춤사위는 우리나라 칼춤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교방(敎坊): 고려시대 설치된 기생학교로 조선시대에는 장악원의 좌방과 우방을 일컫는다. 좌방은 아악 우방은 속악을 맡았고 각 지방에도 설치되었다.
- 전복(戰服): 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전투복
- 전립(戰笠): 조선시대 무관이 쓰던 모자
- 한삼(汗衫): 손을 가리기 위해 두루마기, 소창옷, 여자의 저고리 따위의 윗옷 소매 끝에 길게 덧대는 소매
영문
Jinju Geommu (Sword Dance of Jinju)
영문 해설 내용
검무는 양손에 칼을 쥐고 추는 춤이다. 궁중에서의 연회, 지방 관아 및 양반집의 잔치에서도 공연되었으며, 전승되는 지역마다 다른 형태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검무는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궁중 무희였던 최순이(1892~1969)가 고향으로 돌아와 관청의 예기들에게 전승한 것이다. 8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기 때문에 "진주 8검무"라고도 부른다.
피리, 해금, 장구, 북 등의 악기로 연주하는 장단에 맞추어 느린 박에서 빠른 박으로 진행한다. 검무를 출 때는 궁녀의 평상복에 무관이 입던 전투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손목에는 색동 한삼(손목 끝에 길게 덧대는 소매)을 낀다.
진주검무는 궁중의 잔치에서 추었던 검무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춤동작이 다양하고 활기가 있으면서도 우아하여, 한국 칼춤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자료
- 진주검무 시연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MtGim1KNcZw
-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7,00120000,38&pageNo=5_1_1_0
- 2015년 경남일보 진주검무 소개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100
- 조선중후기 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시문집에 포함된 ‘검무편’에서 진주에서 감상했던 검무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촉석루에서 진주기생들이 추는 진주검무를 보고 그 모습을 시로 찬미해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진주검무 이수자 인터뷰 - 경남신문(2019.3.26)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81585
- 문화포털 홈페이지 -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인터뷰 - http://www.kculture.or.kr/brd/board/572/L/menu/573?brdType=R&thisPage=1&bbIdx=10150&searchField=&searchText=&recordCnt=10 -> 진주에서는 의기 논개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병들을 위한 제향(祭享)은 물론, 여러 애국 행사에는 예로부터 진주검무를 헌무로 올려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고종의 궁중 무희로 있었던 진주교방출신 故 최순이가 진주로 낙향하여 진주 권번에 검무를 전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