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진주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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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검무는 양손에 칼을 쥐고 추는 춤이며 속칭 칼춤이라 부른다. 검무는 전국에 두루 전승되는 것이지만, 진주 지방에 전승되는 검무는 활기 있는 춤이면서도 다른 지역 검무에 비하여 우아하고 유연한 춤사위가 다양하게 구사되는 향토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서, 진주 검무라 구별하여 불리어 왔고, 또 8명이 추는 검무라 하여 진주8검무라 부르기도 한다.

검무는 상고시대부터 있었을 것이나 문헌에는 신라시대 황창랑의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검무는 일명 검기무라하여 궁중의 연정에서도 추었고, 지방 관아와 사가의 잔치에도 공연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진주검무는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여성 검무이다. 임진왜란 때 순국한 병사들과 진주 지역의 기생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기생들이 칼춤을 춘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4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다른 지역의 검무와 달리 8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어 진주8검무라고도 부른다. 목이 꺾이지 않는 칼을 무구로 쓰는 것 역시 다른 지역과의 차이점이다.

피리, 해금, 장구, 북 등의 악기로 연주하는 독특한 구성의 장단에 맞추어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처음에는 색동한삼을 쓰고 춤을 추다가 칼을 사용한 칼사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현재의 진주검무는 과거 진주감영에 속해 있던 기녀들의 의해 전승된 것이다. 조선 후기부터 낙향한 궁중의 기녀들이 감영 소속 기녀들에게 궁중에서 추었던 춤사위를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고종의 궁중 무희로 있었던 진주교방출신 故 최순이의 노력으로 전통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검무는 양손에 칼을 쥐고 추는 춤으로, 궁중에서의 연회, 지방 관아 및 양반집의 잔치에서도 공연되었으며, 전승되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진주검무는 민속춤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희 인원부터 연출형식, 춤가락, 무구의 형태, 칼 쓰는 법 등이 과거 궁중에서 공연되었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 검무 일반적 정의 위치 고민
  • ‘최순이’ 언급 여부 고민 -> 현재 기능보유자들은 최순이에게 전수받았다고 인터뷰하고 있음.
  • 진주 검무의 구체적인 연행 내용도 넣어야 할지..? -> 현재 원고에서는 생략한 상태.
  • 검무는 신라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은 화랑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춤을 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 ‘검무’라는 춤 자체의 유래. 넣어야 할 것인지 고민.
  • 일제강점기 때 고종의 궁중 무희로 있었던 진주교방출신 故 최순이가 진주로 낙향하여 진주 권번에 검무를 전수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대다수이나, 참고 자료 기사의 내용에 의거하면 최순이 이전부터 진주검무가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음.(다산 언급) 따라서 조선 후기부터 전승되었고, 최순이에 의해 그 명맥이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해보임.

1차 수정

검무는 양손에 칼을 쥐고 추는 춤으로, 궁중에서의 연회, 지방 관아 및 양반집의 잔치에서도 공연되었으며, 전승되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검무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병사들과 진주 지역의 기생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기생들이 칼춤을 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진주검무는 과거 진주감영에 속해 있던 기녀들을 통해 전승되었다. 조선 후기부터 낙향한 궁중의 기녀들이 감영 소속 기녀들에게 궁중에서 추었던 춤사위를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고종의 궁중 무희로 있었던 진주교방출신 최순이의 노력으로 전통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피리, 해금, 장구, 북 등의 악기로 연주하는 독특한 구성의 장단에 맞추어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처음에는 색동한삼을 쓰고 춤을 추다가 칼을 사용한 칼사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4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다른 지역의 검무와 달리 8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어 진주 8검무라고도 부르며, 목이 꺾이지 않는 칼을 무구로 쓰는 것 역시 다른 지역과의 차이점이다.

2차 수정

검무는 양손에 칼을 쥐고 추는 춤으로, 속칭 칼춤이라 부른다. 궁중에서의 연회, 지방 관아 및 양반집의 잔치에서도 공연되었으며, 전승되는 지역마다 따른 형태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진주검무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병사들과 진주 지역의 기생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기생들이 칼춤을 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진주검무는 과거 진주감영에 속해 있던 기녀들을 통해 전승되었다. 특히 고종 때 궁중 무희인 최순이(1892~1969)가 낙향하여 진주 기생들에게 전수하였고, 이를 교습한 기생들에 의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피리, 해금, 장구, 북 등의 악기로 연주하는 장단에 맞추어 느린 박에서 빠른 박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오색 한삼을 끼고 느리게 춤을 추다가 맨손으로 춤을 추고, 이어서 빠른 박에 칼을 휘두르면서 역동적인 춤을 춘다. 4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다른 지역의 검무와 달리 진주검무는 8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어 진주 8검무라고도 부른다. 목이 꺾이지 않는 칼을 무구로 쓰는 것 역시 다른 지역과의 차이점이다. 궁중에서 연희하던 검무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활기가 있으면서도 우아하며 다양한 춤사위로 우리나라 칼춤 형태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