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권종 충신문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7월 5일 (일) 01:01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권종 충신문
디지털포천문화대전
대표명칭 권종 충신문
한자 權悰 忠臣門
주소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한성1길 34
지정(등록) 종목 포천시 향토유적 제40호
지정(등록)일 1986년 4월 9일
소유자 사유



해설문

국문

조선 중기 포천 출신의 문신 권종(權悰, 1554~1592)의 충신문이다. 충신문은 나라에서 주로 순국한 충신 집안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내린 정려문을 말한다.

권종은 권근(權近, 1352~1409)의 후손이다. 선조 25년(1592) 금산군수 재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 1537~1599)과 서로 연락을 취하고서 군사를 이끌고 진주에 도착하였다. 관찰사가 그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군량 관리의 임무를 맡기자, 금산으로 돌아와 병사를 모집하고 의병장 고경명(髙敬命, 1533~1592), 조헌(趙憲, 1544~1592) 등과 합세하여 왜적과 격전을 벌이다가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1567~1608 재위)가 충신 정려를 내렸다.

영문

Gate of Loyal Official, Gwon Jong

This gate was erected to honor a civil official, Gwon Jong (1554~1592), of the middle Joseon period (1392-1910). This type of gate is called Chungsinmun (loyal official gate) and used to be erected to honor those who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country.

Gwon Jong was a descendant of Gwon Geun (1352~1409), an eminent Neo-Confucian scholar. When Gown Jong was serving as a magistrate, Korea was invaded by the Japanese in 1592. As he was told by the General in charge of army forces that he could not join the army because of his age, he returned to Geumsan to organize army units and fought against the Japanese. He fought with other Confucian officials such as Go Gyeongmyeong (1533~1592) and Jo Heon (1544~1592) but he died in the battle. For his sacrifice King Seonjo (r. (1567~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