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권종 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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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조선중기 포천 출신의 문신 권종(1554~1592)의 충신문이다. 충신문은 나라에서 주로 순국한 충신 집안에게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내린 정려문을 말한다. 선생은 본관이 안동이고 권근(1352~1409)의 후손이다. 1592년 금산군수에 재임 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 있던 도원수 권율과 서로 연락하여 군사를 이끌고 진주에 도착하였다. 관찰사가 그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군량 관리의 임무를 맡기자 금산으로 돌아와 병사를 모집하고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조헌(1544~1592) 등과 합세하여 왜적과 격전을 벌이다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충신정려를 내렸다.
수정
조선 중기 포천 출신의 문신 권종(權悰, 1554~1592)의 충신문이다. 충신문은 나라에서 주로 순국한 충신 집안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내린 정려문을 말한다.
권종은 권근(權近, 1352~1409)의 후손이다. 선조 25년(1592) 금산군수 재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 1537~1599)과 서로 연락을 취하고서 군사를 이끌고 진주에 도착하였다. 관찰사가 그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군량 관리의 임무를 맡기자, 금산으로 돌아와 병사를 모집하고 의병장 고경명(髙敬命, 1533~1592), 조헌(趙憲, 1544~1592) 등과 합세하여 왜적과 격전을 벌이다가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1567~1608 재위)가 충신 정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