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보가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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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보가산성(保架山城)은 보개산(寶蓋山) 능선 서쪽 계곡을 따라 안쪽과 바깥쪽 이중으로 쌓은 산성이다. 산 이름을 따서 ‘보개산성’이라 하기도 한다. 성의 규모는 전체 길이가 4,495m(외성 4,168m, 내성 327m)으로, 비교적 큰 성에 속한다. 돌로 쌓은 산성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지만, 서쪽과 북쪽 성벽은 일부 남아 있다. 산성의 동쪽과 남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성벽을 쌓지 않았다.

포천과 철원 일대에 있는 여러 산성과 마찬가지로 보가산성 역시 궁예(弓裔)와 관련된 전설을 지니고 있다. 궁예가 왕건(王建)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길 때에 반격의 거점으로 하여 싸운 성이라 한다. 그리하여 ‘궁예왕 성터’라 하거나 성 안을 ‘궁예왕 대궐 터’ 또는 ‘궁예왕 우물 터’라 하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지표조사 결과 산성에서는 고려 중기 유물이 주로 수습되었으므로, 몽고와의 전쟁 때에 주로 사용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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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개산(寶蓋山) 능선 서쪽 계곡을 따라 안쪽과 바깥쪽에 이중으로 쌓은 산성이다. 산 이름을 따서 ‘보개산성’이라 하기도 한다.

성의 규모는 전체 길이가 약 4,495m(외성 4,168m, 내성 327m)로, 비교적 큰 성에 속한다. 돌로 쌓은 산성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지만, 서쪽과 북쪽 성벽은 일부 남아 있다. 동쪽과 남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성벽을 쌓지 않았다.

포천과 철원 일대에 있는 여러 산성과 마찬가지로, 보가산성 역시 궁예(弓裔, ?~918)와 관련된 전설을 지니고 있다. 궁예가 왕건(王建, 847~91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길 때에 반격의 거점으로 삼아 쌓은 성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예왕 성터’라 하거나, ‘궁예왕 대궐 터’ 또는 ‘궁예왕 우물 터’라 불리고 있다.

지표조사 결과 고려 중기 유물이 주로 수습된 것으로 보아, 몽고와의 전쟁 때에 주로 사용된 산성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