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석문종택
예천 석문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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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예천 석문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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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醴泉 石門宗宅 |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지포길 83(도장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2호 |
지정(등록)일 | 2005년 9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예천 석문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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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석문 종택은 조선 광해군 1년(1609) 석문 정영방(鄭榮邦,1577~1650)이 세우고 살았던 건물이다. 정영방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조선 선조 38년(1605) 진사에 입격하였으나 벼슬하지 않고 학문으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종택의 전체 구성은 一자형 초가 대문채와 ㄇ자형 기와집 본채가 배치된 튼 口자형이다. 집 주위는 담장으로 둘렀고, 대문채에서 안마당으로 통하는 사주문(四柱文)* 외에 별도의 일각문(一角門)*을 두어 사랑채의 출입문으로 이용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부엌, 광이 직각으로 배치되었다. 사랑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과 마루가 나란히 있고 직각으로 온돌방 3칸이 더 있다.
이와 같은 구성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주택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유형으로서, 전통 한옥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사주문: 담장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문짝을 달았던 문으로 주로 대문으로 사용
- 일각문: 담장에 의지해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문짝을 달았던 문으로 주로 협문으로 사용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정영방(1577-1650)이 1609년에 세우고 거주했던 곳이다.
정영방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저명한 학자였던 정경세(1563-1633)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605년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거절하고 평생 학업에 종사하였다.
이 집은 대문채와 본채인 안채,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집 주위를 담장으로 둘렀는데, 네 개의 기둥을 세운 문 왼쪽에 있는 초가 건물이 헛간(대문채)이고, 그 맞은편이 본채이다. 본채 중앙과 왼편은 안채에 해당되며, 오른쪽이 사랑채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부엌, 광이 있다. 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 네 개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의 공간과 분리하기 위해 사랑채 앞마당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다.
이처럼 안채와 사랑채 공간이 좌우로 나뉘는 구성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주택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유형으로서, 전통 한옥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