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천왕사지
경주 사천왕사지 Sacheonwangsa Temple Sit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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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사천왕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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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acheonwangsa Temple Site, Gyeongju |
한자 | 慶州 四天王寺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947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8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5,724㎡ |
웹사이트 | 경주 사천왕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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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신라 문무왕 9년(669)에 중국 당나라는 신라가 그들의 도독부(웅진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이에 문무왕이 명랑(明朗)법사에게 적을 막을 계책을 묻자, 명랑은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짓고 부처의 힘을 빌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절을 완성시킬 시간이 없어 먼저 비단과 풀로 절의 모습을 갖추고 명승 12인과 더불어 밀교의 비법인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썼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 그후 10년 만에 절을 완성(679)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찰이다.
이곳은 원래 신유림(神遊林)이라 하여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곳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죽으면서 도리천(忉利天)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는데, 그곳이 낭산 남쪽이라 하였다. 여왕이 죽은 지 30년 만에 여왕의 능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우게 되자 비로소 여왕의 예언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있고 사천왕이 지키는 곳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에 철로를 내면서 강당터 일부가 파괴되었다. 2006~2009년의 발굴조사에서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 배치임이 확인되었고, 목탑터에서는 신라 최고 조각가 양지(良志)가 만든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이 출토되었다. 절터에 두 개의 비석 받침돌이 남아 있는데 동편의 것은 사적비, 서편의 것은 문무왕릉비의 것으로 여겨진다.
-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 신라와 고려시대에 행했던 밀교의식의 하나.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비법
-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 사천왕상을 부조틀로 찍어내어 표면에 갈색의 유약을 입혀 구운 전(塼)돌. 양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영문
Sacheonwangsa Temple Site, Gyeongju
This is the former site of Sacheonwangsa Temple, which was built in 679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It was the first temple built by the kingdom of Silla after its unification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In 669, when Tang China (618-907) was about to invade, the Silla kingdom started the construction of Sacheonwangsa with the intent to defeat the enemy by the power of Buddha. According to a legend, because the Tang forces were quickly approaching there was limited time and thus the appearance of a temple was created out of silk fabric and rice straw. A Buddhist altar was constructed and Buddhist incantations were recited to pray for the determent of the disaster. And so, even before the battle started, a great wind arose and sunk Tang’s entire fleet. Sacheonwangsa was completed ten years later.
The temple site was partly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due to the construction of a railroad. Through excavations conducted between 2006 and 2009, the remains of various buildings were found, including a central gate, two wooden pagodas, a main worship hall, a lecture hall. The arrangement of the building is typical of Silla temples of the period. One flagpole support and two tortoise-shaped pedestals were also found. Shards of green-glazed brick with the inscription“Sacheonwangsa” were excavated at the site of wooden pagodas. It is said that these bricks were made by Yangji, the greatest sculptor of the Silla period.
- 망덕사지: 670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인 679년에 창건된 사천왕사의 옛 터이다. 사천왕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찰이다.
669년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하려 하자, 부처님의 힘을 빌려 적을 막겠다는 기원을 담아 이 사찰을 짓기 시작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을 완성시킬 시간이 부족하여, 먼저 비단과 풀로 절의 모습을 갖추고 불단을 설치해서 다라니를 독송하며 재난을 물리치키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당나라와의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후 10년 만에 절을 완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철로를 내면서 강당터 등 일부 유적이 파괴되었다. 2006-2009년의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 앞에 동탑과 서탑이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였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목탑, 중문, 금당, 강당 등의 건물터들과 당간지주 1기,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2기 등이 남아 있다. 목탑터에서는 사천왕상이 새겨진 녹유 벽돌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신라 최고 조각가 양지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