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분황사화쟁국사비부 Pedestal for the Stele of State Preceptor Hwajae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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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분황사화쟁국사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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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edestal for the Stele of State Preceptor Hwajaeng |
한자 | 芬皇寺和諍國師碑趺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13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
지정(등록)일 | 1979년 1월 25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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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비의 받침돌이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원효대사가 동방의 성인(聖人)임에도 불구하고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웠다. 그 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절 근처에서 이 비석받침을 발견하고 이를 확인하는 글귀를 새겨두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평장사 한문준(韓文俊)이 비문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변에서 찾은 비석 조각이 일부 전해지고 있다.
비석받침의 윗면에 비를 꽂아 세웠던 직사각형 홈을 파 놓았고, 네 모서리가 떨어져나갔다. 옆면에는 옅은 안상을 새겼다.
- 시호(諡號) : 죽은 이의 덕을 기리어 붙여주는 호
영문
Pedestal for the Stele of State Preceptor Hwajaeng
영문 해설 내용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617-686)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의 받침돌이다.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수많은 저술을 남겨 불교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101년 고려 숙종(재위 1095-1105)이 원효의 덕을 추모하며 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원효가 주석했던 분황사에 비석을 세우도록 명했다. 비석은 이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명종(재위 1170-1197) 때에 세워졌다. 비석은 임진왜란 때 분황사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의 서화가이자 금석학자였던 김정희(1786-1856)가 절 근처에서 이 받침돌을 발견하고, 고증을 통해 이것이 원효대사의 비석을 받쳤던 것임을 확인하였다.
받침돌의 윗면에는 비를 꽂아 세우기 위해 판 직사각형 홈이 있다. 옆면에는 안상이 옅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