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원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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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 Wonwonsa Temple Sit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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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원원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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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Wonwonsa Temple Site, Gyeongju |
한자 | 慶州 遠願寺址 |
주소 |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산12-3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46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신라 |
수량/면적 | 318,630㎡ |
웹사이트 | 경주 원원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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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원원사는 안혜(安惠)·낭융(朗融) 등 명랑(明朗)법사를 따르던 신인종 승려들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등이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명랑법사가 세운 금광사(金光寺)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도량이었다.
절터에는 금당터와 2기의 삼층석탑, 석등, 그리고 부도가 남아 있다. 두 탑은 1931년 복원한 것으로 규모와 형태가 동일하다. 석탑 사이에 석등이 있고, 4기의 부도가 절터의 동쪽과 서쪽 계곡에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고려시대 이후 것으로 보인다.
-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 신라와 고려시대에 행했던 밀교의식의 하나.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비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원원사의 옛 터이다.
원원사는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7세기에 활동한 승려 명랑의 제자들과 김유신(595-673)을 비롯한 신라의 귀족들이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웠다고 한다. 국가의 재난을 물리치기 위해 불단을 설치하고 경전을 외우는 밀교 의식을 행했던 사찰 중 한 곳이었다. 조선시대까지도 명맥이 이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은 옛 절터 앞에 1970년대 새로 세운 원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절터에는 금당터와 1931년에 다시 세운 2기의 삼층석탑(보물 제1429호), 석등 1기, 고려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부도 4기가 남아 있다.
- secret practice called munduru
참고자료
- 명랑법사의 우물과 원원사, 프레시안 2014.7.6. 기사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8396?no=118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