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박약재
공주 박약재 Bagyakjae Village Study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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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공주 박약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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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agyakjae Village Study Hall |
한자 | 公州 博約齋 |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12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451㎡ |
웹사이트 | 공주 박약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박약재(博約齋)는 고청(孤靑) 서기(徐起, 1523~1591) 선생이 1573년경 공주 공암에 터를 잡고 살면서 선비들을 가르치던 강당이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며 공암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인근에 ‘공암정사’를 다시 세우고 이 건물에는 ‘박약재’라는 현판을 달았다. ‘박약(博約)’이란 ‘배워서 지식을 넓히고 실행하되 예의에 맞게 하라’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박문약례(博文約禮)’에서 비롯되었다. 서기 선생이 죽은 후에는 박약재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건물을 1794년에 새로 짓고 그 후로도 여러차례 고쳤지만 1794년의 서까래는 그대로다. 공암정사는 1581년 공암서원(孔巖書院)이 되고, 이것이 충현서원(忠賢書院)의 모태가 되었다.
박약재는 충청유학의 산실이었고, 훗날 충현서원은 충청우도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영문
Bagyakjae Village Study Hall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인 서기(1523-1591)가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서당이다. 서당의 이름은 '배워서 지식을 넓히고 실행하되 예의에 맞게 하라'는 『논어』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서기는 1573년경 공암리에 터를 잡은 후 이 서당을 지었고, 이후 그의 명성이 알려지며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인근에 새로운 강학당을 세웠다. 서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이 건물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한동안 폐허로 남아있다가, 1794년에 새로 짓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참고자료
- 박문약례(博文約禮)
- 子曰:「君子博學於文,約之以禮,亦可以弗畔矣夫!」
- 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extensively studying all learning, and keeping himself under the restraint of the rules of propriety, may thus likewise not overstep what is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