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망덕사지
경주 망덕사지 Mangdeoksa Temple Sit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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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망덕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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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angdeoksa Temple Site, Gyeongju |
한자 | 慶州 望德寺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956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7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23,506㎡ |
웹사이트 | 경주 망덕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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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망덕사지는 낭산 남쪽 기슭에 있는 사천왕사지와 마주하고 있는 절터이다.
동·서 목탑 터와 금당, 강당, 중문, 회랑의 건물터가 남아 있고, 절터 서편에 보물 제69호 당간지주가 있다. 2013년 조사에서 고려시대 동제 정병(淨甁)*이 발견되어 이 시기까지는 절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당나라에서는 이를 확인하려고 사신을 파견하였다. 신라는 사천왕사 남쪽에 급히 새로운 절을 짓고 사신에게 황금을 주어 무마하였다. 사신이 당에 돌아가서 황제의 만수(萬壽)를 빌고 있는 절이 맞다고 보고 하여 위기를 넘겼다. 그 후 효소왕 1년(692)에 이 절을 완공하고 당나라를 위한 것이므로 망덕사라 하였다고 한다.
경덕왕 14년(755) 봄, 탑이 진동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두 탑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고 높이는 13층인데 갑자기 진동하여 넘어지려한 지 여러 날이었다. 그해 당나라에서는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는데 아마 그것의 감응이 아닌가 한다.’ 이 절의 역할이 잘 나타나 있다.
- 정병(淨甁):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목이 긴 형태의 물병
- 안록산(安祿山)의 난: 755년에서 763년에 이르기까지 약 9년 동안 중국 당(唐)나라를 뒤흔든 난으로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주동이 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망덕사의 옛 터이다.
망덕사는 692년에 완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670년에 당나라가 신라에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라는 사찰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당나라에서는 이를 확인하려고 신라로 사신을 파견하였다. 신라는 사신이 사천왕사를 보지 못하도록, 사천왕사 남쪽에 급히 새로운 절을 지어 보여주고, 사신에게 황금을 주어 무마하였다. 당에 돌아간 사신은 황제의 만수(萬壽)를 빌고 있는 절이 맞다고 보고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755년 망덕사 금당 앞의 두 목탑이 갑자기 진동하며 무너지려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그때 당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터와 금당, 강당, 중문, 이를 둘러싸는 회랑 등 여러 건물터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의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중문터 남쪽에서는 계단터도 확인되었으며, 절터 서편에는 당간지주(보물 제69호)가 있다. 2013년에는 고려시대의 정병(淨甁)이 발견되어,고려시대까지도 절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