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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관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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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19일 (금) 14:54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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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관아터
Gobu Government Office Site
고부 관아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부관아터
영문명칭 Gobu Government Office Site
한자 古阜官衙址
주소 전북 정읍시 고부면 교동3길 14 (고부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22호
지정(등록)일 2005년 6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7,370㎡
웹사이트 고부 관아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부 관아터는 백제 때부터 성황산에 있었던 고부 관아가 영조 41년(1765)에 옮겨와서 철거되기까지 있던 곳이다. 고부 관아는 1894년 1월 10일(음력) 고부 봉기 때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탐관오리를 몰아내면서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11년 고부 관아의 모든 건물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고부 공립 보통학교가 건립되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전통문화유산을 말살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던 일제의 만행을 명백히 볼 수 있다.

지금은 고부 관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운동장 한쪽에는 초석, 기단석 등 건물의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영문

Gobu Government Office Site

This is the site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government of Gobu was established inside Gobueupseong Walled Town (Jeollabuk-do Province Monument No. 53), but was relocated to this site in 1765, and later demolished in 1911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site is significant in Korean history as the birthplace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when a peasant army led by Jeon Bong-jun drove out the corrupt government officials in the area.

In 1906, the then magistrate of Gobu, Jeong Yong-gi, built a private school for Koreans at a corner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property, but in 1908, the school was turned into a public school by the Japanese authorities. This school later became Gobu Elementary School. In 1911, the buildings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were demolished as part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s policy to eradicate Korean history and culture.

Although the local government office buildings no longer remain today, some stones at the corner of the school sports field which are presumed to have been part of the buildings' foundation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청이 있었던 자리이다. 고부 관아는 원래 성황산에 있는 옛 고부읍성(전라북도 기념물 제53호)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1765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철거되었따.

고부 관아는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이 탐관오리를 몰아내면서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06년 당시 고부군수였던 정용기는 관아 자리 한쪽에 민족 교육을 위한 광화사립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현재 이곳에 있는 고부초등학교의 전신이다. 그러나 일제는 1908년 이곳을 공립 보통학교로 바꾸었고, 이후 1911년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관아 건물을 모두 철거하였다.

관아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운동장 한쪽에는 관아 건물의 초석과 기단석 등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남아 있다.

참고자료

  • https://blog.naver.com/khy021/60027271909 : 고부 학교 역사
  •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474888 : 고부 학교 역사 2
  •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08&index_id=cp02080730&content_id=cp020807300001&print=Y : 고부 구 읍성 - 성황산 내 고부 관아 자리 설명.
  • http://www.jeolla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12576 : 동학혁명, 고부군 연혁 상세
  • 학교 변혁 과정 한번 더 검토 필요할 듯. (관아 철거 시점과 학교 개교 시점, 기사 등 비교하여 정리한 것임.)
  • 부안과 고부의 접경지대에 자리한 고부면 성황산 정상에 쌓여진 옛 고부의 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성 안에서 발견되는 각종 그릇조각과 기와조각으로 미루어보아 삼국시대 백제가 이미 성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중략> 성 내부 중앙은 남쪽을 향한 평지로 되어 있는데, 이곳이 관아터이며 그 북서쪽에는 객사터가 있다. 그리고 남문터와 북동쪽, 북문터에 우물터가 하나씩 있다. (문화콘텐츠닷컴)
  • 조선 영조 41년(1765년) 고부 관아지는 성황산에서 평탄대지로 내려온다. 읍성은 평지에 자리잡은 읍의 주위를 둘러싼 성벽의 일부가 뒤쪽으로 산 위에까지 뻗치고 있는 형태를 취하는 평산성의 입지를 선호하였는데 순수하게 평지에 축조된 형식은 조선 초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고부군도 관아를 평지로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