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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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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18일 (목) 10: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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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성
서천 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천읍성
한자 舒川邑城
주소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823번지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서천 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한반도의 서해안에는 외적의 방어를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축조했다.

돌을 쌓아 만든 서천읍성은 한 도읍 전체를 둘러싸고 군데군데 문을 만들어 바깥과 통하게 만든 성이다. 둘레가 대략 1,190m이며, 성벽 밖으로 돌출된 치성(雉城)이 16개, 문터가 3곳이 있다. 성의 외벽만 돌로 쌓고 내부는 흙과 돌을 섞어서 채웠다. 성벽의 외부에는 10m 전후의 거리에 도랑을 판 해자 시설이 남아 있다.

성은 쌓은 시기는 발굴조사와 문헌기록을 통해 1450년 경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1715년에 다시 쌓은 것으로 처음 축성된 곳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규모가 확장된 것이다.

현재 서천 읍성의 복원을 위해 2030년 까지 중장기 복원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1차 수정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한반도의 서해안에는 외적의 방어를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축조했다.

서천읍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450년 경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1715년에 다시 쌓은 것으로 처음 축성된 곳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규모가 확장된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든 서천읍성은 한 도읍 전체를 둘러싸고 군데군데 문을 만들어 바깥과 통하게 만들었다. 둘레가 대략 1,190m이며, 성벽 밖으로 돌출된 치성(雉城)이 16개, 문터가 3곳이 있다. 성의 외벽만 돌로 쌓고 내부는 흙과 돌을 섞어서 채웠다. 성벽의 외부에는 10m 전후의 거리에 도랑을 판 해자 시설이 남아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한반도의 서해안에는 외적의 방어를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축조했다. → 서해안에는 외적의 방어를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축조했는데, 서천읍성은 서해안을 따라 침략하는 왜구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서천읍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450년 경으로 추정된다. → 서천읍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438년부터 1450년 사이로 추정된다.
    • 돌을 쌓아 만든 서천읍성은 읍치 전체를 둘러싸고 군데군데 문을 만들어 바깥과 통하게 만들었다. 성벽의 둘레는 1,645m(잔존둘레 1,190m)이며, 성벽 밖으로 돌출된 치성(雉城)이 16개, 문터가 4곳(추정)이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읍성이란 군(郡)이나 현(縣)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함께 담당하던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축조하였다. 서천읍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450년(세종 32)경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1715년(영조 27)에 다시 쌓은 것으로 처음 축성된 곳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규모가 확장된 것이다.
    • 돌을 쌓았으며 성벽의 둘레는 대략 1,190m이며, 성벽의 높이는 3m에 이른다.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쌓은 치성(雉城)이 16개, 문터가 3곳이 있다. 성벽은 외벽만 돌로 쌓고 내부는 흙과 돌을 섞어서 채웠다. 성벽 바깥쪽으로 10m 전후의 거리에 너비 5~6m, 깊이 2~3m 정도의 방어용 도랑인 해자(海子)해자 시설이 남아 있다.
    • 『여지도서』 공해조에는 객관 11칸, 동헌 5칸, 아사 9칸, 낙민당 3칸, 향청 5칸, 군사 3칸, 관청5칸, 작청 4칸, 서역청 7칸, 군기 8칸, 사창좌기청 3칸, 군관청 3칸 등의 건물이 있었던 거으로 기록하고 있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수정 의견 없음.

2차 수정

읍성이란 군(郡)이나 현(縣)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함께 담당하던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축조하였다.

서천읍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438년부터 1450년 사이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1715년에 다시 쌓은 것으로 처음 축성된 곳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규모가 확장된 것이다.

돌로 쌓아 만든 서천읍성의 둘레는 약 1,645m였으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대략 1,190m, 높이는 3m이다.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쌓은 치성(雉城)이 16개, 문터가 3곳이 있다. 성벽은 외벽만 돌로 쌓고 내부는 흙과 돌을 섞어서 채웠다. 성벽 바깥쪽으로 10m 전후의 거리에 너비 5~6m, 깊이 2~3m 정도의 방어용 도랑인 해자(海子) 시설이 남아 있다.

참고자료

  • 서천군, 「서천군읍성(서천, 비인, 한산) 정밀실측조사 보고서」, 2015.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서천읍성 동문지 발굴조사 개략보고서」, 2017.
  • 오천환, 「서천읍성 문루 복원을 통해 본 성곽 복원 정책 연구」,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8.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흙으로 쌓아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외벽은 돌로 쌓았고 내부는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것이다. 또한 발굴조사와 문헌기록 등을 통해 축성시기를 145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1751년(영조 27)에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규모가 확장되었는데 본래의 위치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 서천읍성(舒川邑城),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4013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