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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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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사지
서현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현사지
한자 西峴祠址
주소 전북 정읍시 태인면 서재길 13 (태서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48호
지정(등록)일 1981년 4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548㎡
웹사이트 서현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현사지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박문효(朴文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사당인 서현사의 옛터이다.

박문효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를 따라가 모셨다. 그러나 다음 해 한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개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26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박문효의 부인 송씨는 어린 자식과 함께 태인으로 내려와 있다가, 남편의 죽음을 전해 듣고 남편을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

나라에서는 순조 19년(1819)에 서현사를 세워 충신 박문효와 그 부인의 뜻을 기렸다. 이 사당은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려서 지금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이 터에는 박문효의 부인 송씨를 위해 세운 정려문과 유허비 선조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만 남아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박문효(1568-1593)의 위패를 모신 사당 서현사의 옛 터이다.

박문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을 떠난 선조를 호종하였다. 그러나 1593년 한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개성에서 왜군을 만나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부인 송씨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집안 소유의 땅이 있었던 태인으로 피난했는데, 남편의 죽음을 전해 듣고는 함께 따라 온 늙은 종에게 아이를 부탁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행적을 기리고자 1819년 나라에서 사당을 세웠는데,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고 부인 송씨를 위해 1829년에 세운 정려문과 1914년에 세운 서현사 유허비 등만이 남게 되었다.

1984년 사당을 복원하고 1991년 강당을 지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 묘정에는 1985년에 세운 중건사적비와 태산 허씨의 정려각 1채도 자리하고 있다.

  • 마지막 문장 쓸 것인지 고민 필요. (추가 정려각 1채 : 박태운 처 태산허씨의 정려로 되어 있으나, 정보 찾기 어려움...)
  • 경내의 배롱나무들은 사당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