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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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서원
Bongamseowon Confucian Academy
봉암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봉암서원
영문명칭 Bongamseowon Confucian Academy
한자 鳳岩書院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화차길 159 (장안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54호
지정(등록)일 1981년 10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봉암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봉암서원은 망암 변이중(望庵 邊以中, 1546~1611) 선생을 주향*으로 하고, 윤진(尹軫), 변윤중(邊允中), 변경윤(邊慶胤), 변덕윤(邊德胤), 변휴(邊烋), 변치명(邊致明) 등 여섯 분을 종향**하면서 그 분들의 학문과 정신을 추모하고 제자를 가르쳤던 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조선 숙종 23년(1697)에 최초로 건립되어, 조선 고종 5년(1868)에 서원ㆍ사우 훼철령으로 헐리게 되었다. 1981년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 서원이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망암 변이중 선생은 이곳 봉암마을에서 태어났으며, 28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호조ㆍ이조 좌랑(佐郞), 형조ㆍ예조 정랑(正郎), 군기ㆍ종부 시정(寺正)과 황해ㆍ평안도 도사(都事), 풍기ㆍ함안 군수 등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전라도 소모사(召募使)와 조도어사(調度御使)를 두 번, 독운사(督運使)를 세 번 역임하여 병력, 군량, 무기 등을 모집하고 수송하는 중요한 일을 했다.

특히, 무기를 만드는 국방과학의 선구자로서 왜군의 조총에 맞설 무기인 화차 3백대를 제작하여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에게 보내졌고, 그 결과 적은 병력으로 왜군을 무찌르는 행주대첩을 이루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대문 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교육공간인 성경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공간인 종앙사가 위치해 있다. 성경당과 내삼문 사이에는 유생들이 숙식하던 곳인 훈덕재, 경의재가 위치해 있다.


  • 주향(主享) : 서원이나 사우에서 위패를 모시어 제향하는 일
  • 종향(從享) :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

영문

Bongamseowon Confucian Academy

Confucian academies, called seowon in Korean, are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ich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Bongamseowon was established in 1697 to commemorate the civil official Byeon Yi-jung (1546-1611), who was born in Jangseong.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3 and served several government position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carried out important missions such as recruiting military troops and gathering and transporting provisions and weapons. He is noted for manufacturing 300 mobile fire launchers (hwacha), which played a decisive role in defeating the Japanese army even though the Korean troops were outnumbered.

The academy was demolished in 1868 following a nationwide decree to shut down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and was rebuilt in two stages in 1976 and 1984.

In addition to Byeon Yi-jung, the academy enshrines the spirit tablets of six other people, namely his son Byeon Gyeong-yun (1574-1623), his descendants Byeon Hyu (1640-1699) and Byeon Chi-myeong (1693-1775), and three civilian army leaders who helped defend the area during foreign invasions, Yun Jin (1548-1597), Byeon Yun-jung (?-1597), and Byeon Deok-yun (1593-1655).

The complex, from front to back, includes a main gate, a lecture hall, two dormitories, an inner gate, and a shrine.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봉암서원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변이중(1546-1611)을 기리기 위해 1697년에 세운 서원이다. 변이중은 장성 출신으로, 1573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병력, 군량, 무기를 모집하고 수송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특히 화차 300대를 제작하여, 적은 병력으로 왜군을 무찌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봉암서원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76년과 1984년에 다시 세워졌다.

변이중 외에도, 아들인 변경윤(1574-1623)과 후손인 변휴(1640-1699)와 변치명(1693-1775), 그리고 전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윤진(1548-1597), 변윤중(?-1597), 변덕윤(1593-1655) 등 6명의 위패를 더 모시고 있다.

경내의 건물은 앞에서부터 정문, 강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