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향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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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향산고택
Hyangsan House, Andong
안동 향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향산고택
영문명칭 Hyangsan House, Andong
한자 安東 響山古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297-6 (안막동)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80호
지정(등록)일 2014년 2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일곽(건물 2동, 토지 916㎡<1필지>)
웹사이트 안동 향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향산 고택은 순국의사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가 살던 집이다. 향산은 조선 고종 3년(1866)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응교, 양산군수를 지냈다. 1907년에는 자헌대부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유서를 남기고 단식하다가 순국했다.

향산 고택은 한 집안 삼대에 걸쳐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였는데 그 공로를 기려 ‘삼대독립운동가문’으로 지정되었다. 독립운동사의 지역적 상징성과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 앞쪽에 사랑채와 중문간채가 있고, 그 뒤에 안채가 있는데 동북쪽에서 서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이다. 사랑채는 맞배지붕* 건물로 방풍판**을 달았는데 안동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다.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박공지붕)
  • 방풍판: 바람을 막기 위하여 박공지붕의 양쪽 끝 박공 아래에 붙이는 널빤지.

영문

Hyangsan House, Andong

This is the house of Yi Man-do (1842-1910, pen name: Hyangsan), a Confucian scholar and prominent lead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i was an 11th-generation descendant of Yi Hwang (1501-1570), one of the greatest Confucian scholars in Korean history. Yi Man-do plac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in 1866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owever, as the country fell into disarray near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he resigned from his position and secluded himself to focus on his studies. In 1895, when the queen was assassinated by the Imperial Japanese, he mobilized a civilian army in the Andong area. In 1905, when the Japan–Korea Protectorate Treaty was signed under duress, he passionately appealed for its annulment. In 1910, when Korea lost its sovereignty, he went on a hunger strike and died in 24 days.

Following Yi’s example, his older son Yi Jung-eop (1863-1921), daughter-in-law Kim Rak (1862-1929), grandsons Yi Dong-heum (1881-1967) and Yi Jong-heum (1900-1976)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constructed in the early 19th century. It was originally built in Togye-ri Village, but due to the construction of Andong Dam,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6. The house consists of a women’s quarters and men’s quarters which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만도(1842-1910, 호: 향산)이 살던 곳이다.

이만도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유학자 중 한 사람인 이황(1501-1570)의 11대손으로, 1866년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나라가 혼란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1895년 왕비가 일제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되자 안동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에는 조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자 단식을 시작하였으며,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이만도의 뒤를 이어, 장남인 이중업(1863-1921), 며느리인 김락(1862-1929), 손자인 이동흠(1881-1967), 이종흠(1900-1976) 형제도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향산고택은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토계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인해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