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보조국사비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10일 (수) 09:53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송광사 보조국사비
Stele of State Preceptor Bojo at Songgwangsa Temple
송광사보조국사비.jpg
대표명칭 송광사 보조국사비
영문명칭 Stele of State Preceptor Bojo at Songgwangsa Temple
한자 松廣寺 普照國師碑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91호
지정(등록)일 1982년 10월 15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송광사 보조국사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송광사를 크게 일으킨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의 출가 후 행적과 업적을 새겨 놓은 비석이다.

보조국사의 호는 목우자(牧牛子), 법명(法名)은 지눌(知訥)이며,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탑호(塔號)는 감로(甘露)이다. 출가 전의 성씨(俗姓)는 정씨(鄭氏)로 서흥(지금의 황해도)에서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고 평생을 수선(修禪)에 힘썼으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불교 수행법인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여 조계종의 기틀을 세웠다.

보조국사 입적 후 1210년에 승탑을 세웠다. 제자 혜심이 중심이 되어 보조 국사의 행장을 모아 왕에게 탑비를 세워줄 것을 주청하였고 왕이 김군채(金君綵)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였다. 1211년 12월 비문을 새기고 1213년 4월 김진(金振)이 탑비를 세웠다. 이후 보조국사비가 파괴된 것을 1678년(숙종 4)에 다시 세웠다.

영문

Stele of State Preceptor Bojo at Songgwangsa Temple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State Preceptor Bojo (1158-121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It was erected together with a stupa containing Bojo's remains, which is currently located behind Gwaneumjeon Hall.

State Preceptor Bojo (i.e. Jinul) became a Buddhist monk at the young age of eight years old an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onks in 1182. It was a time of social disarray in the country due to the escalated opposition between the doctrinal and meditational schools of Buddhism. In 1190, together with a group of like-minded monks, he started a movement to reform Buddhism in the country, criticizing corruption within the Buddhist community and insisting on abandoning fame and materialism. Eventually, he decided to seclude himself in the mountains to practice asceticism. In 1205, he stayed in Songgwangsa Temple and educated the public. After his death,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state preceptor.

The epitaph of the stele was carved in 1211, and the stele was erected in 1213. Later, it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erected again in 1678.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1158-121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보조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함께 세워졌으며, 승탑은 현재 관음전 뒤에 있다.

보조국사의 법명은 지눌로, 8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고 1182년 승과에 급제하였다. 당시는 교종과 선종의 대립이 극심한 때였고 사회적으로도 혼란한 시기였다. 지눌은 뜻을 같이 하는 10여 명의 승려들과 함께 1190년 거조사(오늘날의 영천)에 모여, 타락한 당시의 불교계를 비판하고,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수행에 힘쓰자고 결의하였다. 1205년부터 송광사에 머무르며 대중을 지도하였다. 입적 후 국사로 추증되었다.

보조국사비의 비문은 1211년에 새겼고 1213년에 탑비를 세웠다. 이후 전란으로 파괴되었다가 1678년에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