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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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옮긴 이듬해에 왕이 수원에 내려와 행궁에 머물 때 신하들을 만나서 일을 보기 위해 지었다가 1794년(정조18)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해 가을에 건물을 증축했다. 처음 건물 이름은 은약헌(隱若軒)이라 했다가 증축하면서 유여택으로 고쳤다. 은약헌은 옛 수원읍 시절부터 사용하던 건물 이름이었다. 유여택이란 이름은 시경에서 따온 것으로, 주나라의 기산(岐山)을 두고 하늘이 산을 만들어 ‘이곳을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此維與宅)’는 고사에 근거했다. 정조는 은약헌 시절에도 이 건물에서 과거시험을 치러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고 또 신하들을 만나보았으며 유여택으로 이름을 고친 후에도 수원에 내려오면 반드시 이곳에서 신하들을 접견하였다. 처음 지은 건물은 8칸 규모에 북쪽 1칸을 누마루로 해서 공신루(拱宸樓)라 이름 짓고 또 뒤쪽으로 서쪽 5칸, 북쪽 2칸을 덧붙인 모습이었다. 증축하면서 실내에 온돌 4칸반을 들이고 북쪽 방에도 온돌을 들여 거주할 수 있도록 꾸몄다. 또한 북쪽과 남쪽 및 서쪽으로 행각을 크게 내서 행각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을 만들었다. 1800년(순조즉위년) 정조가 승하하자 현륭원 재실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와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초상화를 한 동안 이곳에 모시고 있다가 이듬해 화령전이 완성되면서 어진들을 모두 화령전으로 옮겨 모셨다.
- 연혁 - 1790년(정조14) 건립 / 1794년(정조18) 증축 / 2002년 복원
- 구조 - 겹처마 팔작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수원시 관청 내에 장관이 사용하는 별당으로 지은 건물이다. 화성 축성을 하면서 건물을 증축해서 행궁의 별당으로 삼았다. 정조 임금이 이곳에서 신하들을 만나보고 수원에서 과거시험을 치렀을 때 합격자들을 여기서 직접 만나기도 하였다. 건물 이름은 정조 임금이 기원전 5세기 경에 지어진 중국의 오래 된 시집인 시경에서 따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