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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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
Sesimjeong Pavilion
대표명칭 세심정
영문명칭 Sesimjeong Pavilion
한자 洗心亭
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 산137
지정(등록) 종목 양평군 향토유적 제23호



해설문

국문

세심정은 명종 16년(1561)에 조욱(趙昱)의 제자들이 세심당(조욱의 집) 근처에 세운 정자이다. 기둥이 6각형을 이룬 형태(6각원당형)로, 현재의 건축물은 1940년 무렵에 고쳐 지은 것이다.

조욱은 조광조의 제자로, 1546년 이곳에 머무르면서 집 이름을 세심당(洗心堂)이라 하였다. 이곳에서 학문 연구와 제자를 기르는 일에 힘썼다.

영문

Sesimjeong Pavilion

This pavilion was first built in 1561 by disciples of Jo Uk (1498-1557), a scholar of the mid-Joseon period, in honor of their teacher.

Jo Uk was a disciple of Jo Gwang-jo (1482-1519), a prominent Confucian scholar and influential civil official of the early Joseon period.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19, Jo Gwang-jo was persecuted and his followers were exiled or discharged of their posts. However, Jo Uk was spared due to his young age. He then led a secluded life in Yongmunsan Mountain and dedicated himself to studying and teaching younger scholars. He was called “Master Yongmun” after the mountain's name. He was also skilled at writing poetry and drawing.

This pavilion was built on the spot where Jo lectured his students. The current building was reconstructed in 1940.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학자 조욱(1498-1557)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기 위해 1561년에 세운 정자이다.

조욱은 조선의 유명한 성리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조광조(1482-1519)의 제자이다. 1519년에 일어난 사화 때 스승 조광조와 그 문인들이 유배되거나 파직되었으나 조욱은 나이가 어려 화를 면했다. 이후 용문산에 은거하며 학문과 교육에 힘썼고, ‘용문 선생’이라 불렸다. 시문과 서화에도 능했다.

이 정자는 조욱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곳에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194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