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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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한자 麻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
주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 34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등록)일 1972년 12월 29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불상은 팔각연화대좌(八角蓮花臺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비로자나 불상으로서, 오랫동안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얼굴 부분의 마멸이 심하다. 나선형 머리카락의 머리에 살상투가 낮게 솟아 있으며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신체는 결가부좌한 모습이 균형을 이루며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한 두 손은 약간 작은 듯하면서 단정한 신체와 잘 조화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서 몸에 밀착되어 신체의 윤곽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배부근에는 띠 매듭이 표현되었고 두 손에 걸쳐 평행 옷 주름이 조각되어 있다. 길상좌를 한 무릎은 안정감이 있고 힘이 있다. 팔각연화좌인 대좌(臺座)의 상대는 앙련(仰蓮)이며, 중대는 각면에 보살상(菩薩像)이 조각된 대석과 복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말에 유행한 석조 비로자나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제작연대는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불상은 통일신라 말기에 유행한 불좌상의 양식과 특징을 지니고 있어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을 하고 있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있다.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하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나타낸 것이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얼굴 부분의 훼손이 심하다. 목은 시멘트로 고정시켜 주름이 보이지 않고 어색하다. 그러나 불상의 몸체나 이를 받치고 있는 대좌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신체의 윤곽이 잘 드러나 있고 두 손이 신체와 조화롭다. 무릎 역시 안정감이 돋보인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상대석에는 연꽃이 가지런히 배열되었다. 중대석에는 각 면에 부처와 보살을 표현하였다. 하대석에는 향로와 사자를 새겨 넣었다.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이름 때문에 마애불(磨崖佛)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이 불상 이름의 마애는 단순한 지명이다. 마애불이 아니다.

1차 수정

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나타낸 불상이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얼굴 부분의 훼손이 심하다. 목은 시멘트로 고정시켜 주름이 보이지 않고 어색하다. 불상의 몸체나 이를 받치고 있는 대좌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싼 손 모양은 비로자나불의 상징이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상대석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고, 중대석에는 각 면에 부처와 보살을 새겼다. 하대석에는 향로와 사자를 새겨 넣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