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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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9일 (화) 10: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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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천대
자천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자천대
한자 紫泉臺
주소 전북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상평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지정(등록)일 1984년 4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자천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자천대는 원래 옥구군 선연리 하제포구의 작은 바위산을 말한다. 통일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노닐며 독서했던 곳이라 전한다. 바위산 위에 정자가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정자를 허물었고, 1934년 옥구군수 최학수가 지역 유림의 뜻을 모아 선연리에 정자를 다시 세웠다. 이후 옥구향교가 있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 경현재라 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6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자천대(紫泉臺)라는 이름은 바위산 옆의 연못이 항상 붉어서 붙은 이름이다.

자천대는 전면 3칸·측면 1칸의 2층 누마루집으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의 『택리지』에 자천대와 관련한 전설이 실려 있다. 자천대에는 두 개의 돌 항아리가 있었는데 최치원이 태수를 지낼 때 항아리 안에 비밀문서를 감춰두었다고 한다. 돌 항아리를 끌어당겨 움직이면 바다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에 가뭄이 들면 주민 수백 명이 큰 밧줄로 항아리를 끌어당겨 비를 불렀다. 하지만 사신들이 옥구현에 올 때마다 가서 구경하느라 옥구의 백성들이 괴로웠다. 이에 정자를 허물고, 돌 항아리도 땅에 묻었다고 한다.

1차 수정

자천대는 통일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노닐며 독서했던 곳이라 전한다.

원래 이 정자는 옥구군 선연리 하제포구의 작은 바위산 위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정자를 허물었고, 1934년 옥구군수 최학수가 지역 유림의 뜻을 모아 선연리에 정자를 다시 세웠다. 이후 옥구향교가 있는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지금의 건물은 196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자천대라는 이름은 바위산 옆의 연못이 항상 붉어서 붙은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자천대에는 두 개의 돌 항아리가 있었는데 최치원이 태수를 지낼 때 항아리 안에 비밀문서를 감춰두었다고 한다. 돌 항아리를 끌어당겨 움직이면 바다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에 가뭄이 들면 주민 수백 명이 큰 밧줄로 항아리를 끌어당겨 비를 불렀다. 하지만 사신들이 옥구에 올 때마다 가서 구경하느라 백성들이 괴로워졌고, 이에 정자를 허물고 돌 항아리도 땅에 묻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자천대, 『디지털군산문화대전』
  • 자천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옥구 상평리 자천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