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옥산성
거제 옥산성 Oksanseong Fortress, Geoj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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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거제 옥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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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Oksanseong Fortress, Geoje |
한자 | 巨濟 玉山城 |
주소 |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28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10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2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8,157 |
웹사이트 | 거제 옥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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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옥산성은 거제면에 행정관아가 있을 당시 지어진 성이다. 계룡산의 수정봉 정상부의 봉우리에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선시대에는 ‘수정(水晶)산성’이라 하였으며, 지금은 산성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玉山金城)’이라는 명문을 따라 ‘옥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1873년(고종 10)에 거제부사 송희승(宋熙昇)이 행정, 경제, 군사 중심지에 읍성을 쌓을 것을 건의하였으나 백성들의 부담이 크다 하여 허락하지 않자 그 대신 수정봉에 성을 쌓아 8개월 만에 완성하였다.
옥산성은 조선시대 마지막 단계에 축조된 것으로 규모는 둘레 778m, 높이 4.7m, 폭 3m이다. 사방에 문지를 만들고, 남쪽과 서쪽 문지에는 옹성을 쌓아 성문을 보호하였다. 성내에는 무기고, 집수지 등을 만들었으며, 입구 아래쪽의 경사가 급한 곳에는 적에게 던지기 위해 쌓아놓은 방어용 돌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 옹성: 성곽에 난 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바깥에 설치한 이중 성곽을 옹성(甕城)이라 한다.
영문
Oksanseong Fortress, Geoje
This stone fortress, encircling Sujeongbong Peak of Gyeryongsan Mountain (566 m above sea level), was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n 1873, Song Hui-seung, the magistrate of Geoje, suggested the central government build a walled town in Geoje-myeon, in which the local government office was located.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However, as Geoje government office had been relocated several times, the central government refused Song’s plan to avoid harsh burden levied on the local community. Then, Song decided to build a fortress instead and completed the construction only in eight months, mobilizing the local people to the construction.
The fortress measures 778 m in perimeter. It was built with four main gates, and the south and west gate each featured a semi-circular wall to strengthen the gate’s defenses. An armory and a reservoir site were also found inside the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계룡산 수정봉 정상부를 돌로 둘러쌓아 만든 조선시대 산성이다.
1873년 거제부사 송희승은 당시 관아가 있던 거제면에 읍성을 쌓을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다.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그러나 거제 관아가 이미 여러 차례 옮겨지며 새로 지어졌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송희승은 대신 산성을 쌓기로 결심하고, 주민들을 동원하여 8개월 만에 성을 완성하였다.
성의 둘레는 778m이다. 사방에 문을 만들고 남쪽과 서쪽 문에는 옹성을 쌓아 성문을 보호하였다. 성 안에서는 무기고와 집수지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