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흥륜사지
경주 흥륜사지 Heungnyunsa Temple Sit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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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흥륜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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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eungnyunsa Temple Site, Gyeongju |
한자 | 慶州 興輪寺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국당3길 5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15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신라 |
수량/면적 | 16,740㎡ |
웹사이트 | 경주 흥륜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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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흥륜사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절이라 한다. 고구려 승 아도(阿道)가 지었다고도 하고, 미추왕 때 지었다고도 한다.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뒤 다시 짓기 시작하여 진흥왕 5년(544) 완공하였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하고 대법회를 주관하게 되어 왕실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라의 큰 절이 되었다.
흥륜사는『삼국유사』에 자주 등장한다. 승려 밀본(密本)이 흥륜사에 있으면서 선덕여왕(善德女王)을 치료했고, 승상 김양도의 병을 낫게 했다. 양도가 그 보답으로 흥륜사 오당(吳堂)에 미륵삼존상을 봉안하였다. 금당에는 신라 십성(十聖)*의 소조상을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흥륜사의 남문을 길달문이라고 불렀는데, 귀신인 길달(吉達)이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전생에 밭을 보시했던 절이고,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곳도 이 절이라 한다.
신라말 반란군에 의해 불탄 것을 경명왕 5년(921)에 다시 지었고, 조선시대에 화재로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의 석조물 가운데 가장 큰 석조와 배례석이 있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신라의 미소로 일컫는 보물 제2010호 사람얼굴 모양의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지금은 1980년대에 새로 지은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영묘사’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의 터로 보기도 한다.
- 신라 십성(十聖) : 십성은 신라에 불교를 정착, 대중화시키고, 국가불교로서 자리 잡는데 기여한 성자들이다. 아도·이차돈·의상(義湘)·혜숙(惠宿)·안함(安含)·표훈(表訓)·원효(元曉)·자장(慈藏)·혜공(惠空)·사파(蛇巴).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신라에서 가장 처음 지어진 절이라고 하는 흥륜사의 옛 터이다.
흥륜사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고구려의 승려인 아도(阿道)가 불교를 전하면서 지었다고도 하고, 미추왕 때 지어졌다고도 한다.
527년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뒤 다시 짓기 시작하여 544년 완공되었다. 신라 말 반란군에 의해 불에 탄 것을 921년 다시 지었으나, 조선시대에 화재로 폐사되었다.
금당지 앞에는 팔각탑지와 서쪽의 경루가 있고 이를 둘러싼 회랑지가 조사되었다. 신라시대의 석조물 가운데 가장 큰 석조와 배례석이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신라의 미소로 일컫는 사람 얼굴 모양의 수막새(보물 제2010호)도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지금은 1980년대에 새로 지은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전생에 밭을 보시한 절과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은 절로 기록되어 있다. 흥륜사 금당 안에 선덕여왕 때의 승상 김양도가 여왕과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준 보답으로 봉안한 미륵삼존상이 모셔져 있었고, 신라에 불교가 정착하도록 기여한 10명의 벽화와 소조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영묘사’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의 터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