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제석사지
익산 제석사지 Jeseoksa Temple Site, Ik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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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익산 제석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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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eseoksa Temple Site, Iksan |
한자 | 益山 帝釋寺址 |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405호 |
지정(등록)일 | 1998년 5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백제 |
수량/면적 | 47,881㎡ |
웹사이트 | 익산 제석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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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19
익산 제석사지는 백제 무왕대에 운영된 왕실사찰이다. 현재 목탑지의 중앙에 2매로 절단된 심초석이 남아 있다. 제석사와 관련해서는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일본 청련원에서 발견)에 ‘백제 무왕때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지은 절’이며, ‘639년에 화재로 인하여 7층 목탑의 초석에 있던 사리장엄만 남기고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있다.
그동안의 조사에서 판축기법으로 만들어진 목탑지와 법당지, 강당지, 회랑지, 중문지, 승방지 등이 확인되었고, 인동당초문 암막새, 연화문 수막새, ‘제석사(帝釋寺)’명 기와 등이 확인되어 이곳이 백제 사찰 제석사터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특히 2003년에는 제석사지 북쪽 400m에 위치에서 ‘제석사 화재’관련 폐기유적이 조사되었다. 천부상, 악귀상 등 불에 탄 소조상과 벽체편, 흙벽돌, 백제 기와편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됨에 따라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제석사 화재 사실, 백제 무왕대의 익산 천도 사실의 신빙성도 한층 높아졌으며, 왕실사찰 제석사의 성격과 위상, 규모 등에 대해서도 더욱 확실하게 밝혀졌다.
제석사지는 현재까지 조사된 1탑 1금당식 백제 사찰 중 최대 규모로서, 1998년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폐기유적을 추가하여 지정 보호하고 있다.
2020
이 터는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제석사가 있던 곳이다. 『관세음응험기』*에 따르면 제석사는 무왕 40년(639) 벼락으로 탑 하부 초석에 있던 사리장엄만 남고 모두 불타버려 다시 지었다고 한다. 발굴조사에서 금당지·목탑지·회랑지·중문지 등이 확인되었다. 제석사지 북쪽 400m 지점에는 제석사 화재 후 폐기물을 버렸던 유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제석사의 가치와 위상을 보여주는 천부상, 악귀상 등 불에 탄 소조편, 벽체편, 흙벽돌, 백제 기와편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제석사지는 지금까지 조사된 1탑 1금당식 백제 사찰 중에서 최대 규모이다. 익산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등과 함께 백제의 익산천도를 뒷받침해 주는 곳으로서 백제의 불교문화와 뛰어난 건축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 일본 교토 쇼렌인(靑蓮院)에 소장된 보물로, 관음신앙 사례집이다.
영문
Jeseoksa Temple Site, Iksan
2019
This is the former site of Jeseoksa, a Buddhist temple founded in the 7th century during the reign of King Mu (r. 600-641)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In order to strengthen sovereignty over the southern region of the kingdom, King Mu constructed a secondary capital about 35 km to the south of the royal capital, Sabi (today’s Buyeo). A detached palace was built in today’s Wanggung-ri area (about 1.5 km to the west) and a royal temple named Jeseoksa was built here to pray for the prosperity of the royal family and the well-being of the kingdom. However, the temple was completely destroyed by fire in 639, leaving only the foundation of the wooden pagoda in front of the temple’s main hall.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 surveys conducted from 1993, various remains have been found including sites of a wooden pagoda, main worship hall, lecture hall, monks’ living quarters, and corridors. Excavated artifacts including concave roof-end tiles with scroll design, convex roof-end tiles with lotus design, and a roof tile shard with the inscription of “Jeseoksa.”
In 2003, a waste heap was found 400 m to the north of this temple site. Numerous burnt artifacts dating to the Baekje period were found at this site, including shards of clay statues, walls, earthen bricks, and roof tiles, attesting to the fire which occurred at Jeseoksa Temple.
The temple site was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 405 in 1998, and the waste heap site was added to the designated area in 2013.
2020
This is the former site of Jeseoksa, a Buddhist temple founded in the 7th century during the reign of King Mu (r. 600-641)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It was built here to pray for the prosperity of the royal family and the well-being of the kingdom. However, the temple was completely destroyed by fire in 639, leaving only the foundation stones of the wooden pagoda.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s beginning in 1993, various remains were found including the sites of the wooden pagoda, main worship hall, and corridors. This site is the largest among Baekje temples with this same layout and is an important archaeological site for understanding the Buddhist culture and outstanding architectural technology of the Baekje kingdom.
In 2003, a waste heap was found 400 m to the north of this temple site, in which numerous burnt artifacts dating to the Baekje period were found, including shards of clay statues, walls, earthen bricks, and roof tiles, which attests to the fire which occurred at Jeseoksa Temple. These artifacts are currently kept at the Iksan National Museum.
영문 해설 내용
2019
이곳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인 7세기경 창건되었던 제석사의 옛터이다.
무왕은 수도인 사비(오늘날의 부여)에서 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익산에 별도(別都)를 경영하여, 백제 남부 지역에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왕궁리 지역에 궁성을 짓고, 궁성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이곳에 왕실사찰인 제석사를 창건하여 왕실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639년 화재로 인하여 법당 앞에 있던 목탑의 초석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1993년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목탑지, 법당지, 강당지, 회랑지, 승방지 등의 여러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발굴된 유물로는 인동당초문 암막새, 연화문 수막새, ‘제석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 등이 있다.
특히 2003년에는 제석사지 북쪽 400미터 위치에서 폐기물들이 묻혀있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소조상, 벽체 조각, 흙벽돌,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 등이 불에 탄 채로 다량 출토됨에 따라, 제석사에서 일어났던 화재가 사실임이 밝혀졌다. 폐기물 유적도 2013년 사적 제405호로 추가로 지정되었다.
2020
이곳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인 7세기경 창건되었던 제석사의 옛터이다. 제석사는 왕실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왕실사찰이었으나, 639년 화재로 인하여 법당 앞에 있던 목탑의 초석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여러 차례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지, 목탑지, 회랑지 등의 여러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1탑 1금당식 백제 사찰 중 최대 규모이며, 백제의 불교문화와 뛰어난 건축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제석사지 북쪽 400m 위치에서 폐기물들이 묻혀있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소조상, 벽체 조각, 흙벽돌,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 등이 불에 탄 채로 다량 출토됨에 따라, 제석사에서 일어났던 화재가 사실임이 밝혀졌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