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회집·탄옹문집 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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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5월 21일 (목) 14: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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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집탄옹문집판목
Printing Woodblocks of Manhoejip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and Tanongjip (Collected Works of Gwon Si)
만회집탄옹문집판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만회집탄옹문집판목
영문명칭 Printing Woodblocks of Manhoejip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and Tanongjip (Collected Works of Gwon Si)
한자 晩悔集炭翁文集板木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239-1
지정(등록) 종목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등록)일 1989년 12월 13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610판
웹사이트 만회집탄옹문집판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만회집·탄옹문집 판목은 조선 후기 예학자 만회 권득기(晩悔 權得己)의 문집인 만회집의 책판과 그의 아들 탄옹 권시(炭翁 權諰)의 문집인 탄옹집의 책판이다.

만회집 책판은 현재 328판이 남아 있는데, 크기는 세로 27.5㎝, 가로 51.0㎝, 두께 3.8㎝이다. 만회집은 1630년경에 아들 권적과 권시 등이 수습한 시문(詩文)을 증손인 권이진이 1712년 경주(慶州) 부윤(府尹) 재임 시에 제작한 것이다. 권이진은 만회집을 간인한 후에 책판을 공주(公州) 유성현(儒城縣) 탄방(炭坊)에 두었으나, 현재는 도산서원(道山書院)에 보관되어 있다.

탄옹집 책판은 현재 282판이 남아 있고, 판목의 크기는 세로 28.2㎝, 가로 50.0㎝, 두께3.8㎝이다. 문집은 저자가 직접 정리한 시록(詩錄)을 손자인 권이진과 증손 권정징(權瀞徵)이 수집한 것이다. 서문은 종손 권정징(權瀞徵)이 이익에게 받았으나 문집에는 실리지는 않았다. 책판의 제작은 권정징이 장수 현감 재임 시에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권말의 간인을 볼 때 문집은 1738년 봄에 간행되었고 책판은 공주의 도산서원에 보관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영문

Printing Woodblocks of Manhoejip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and Tanongjip (Collected Works of Gwon Si)

These woodblocks were made for printing the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1570-1622, pen name: Manhoe) and his son, Gwon Si (1604-1672, pen name: Tanong).

Both father and son were talented Confucian scholars and engaged in intellectual exchange with some of the greatest minds of their time. Gwon Deuk-gi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9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opposed the politics of King Gwanghaegun (r. 1608-1623), which led him to resign from his position and devote himself to the studies of Confucian classics. Gwon Si was exceptionally intelligent from an early age and became famous for his distinguished academic achievement. After a brief career as a government official, he retired to Tanbang-dong where he built a study hall to teach his students.

The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consists of poems and prose written by Gwon, compiled by his sons in 1630, and carved onto woodblocks in 1712 by his great-grandson Gwon I-jin (1668-1734). A total of 328 woodblocks remain, each measuring 51 cm in length, 27.5 cm in width, and 3.8 cm in thickness.

The Collected Works of Gwon Si consists of Gwon Si’s writings, compiled by himself, and printed in 1738 by his grandson Gwon I-jin and great-grandson Gwon Jeong-jing (1697-1758). A total of 228 woodblocks remain, each measuring 50 cm in length, 28.2 cm in width, and 3.8 cm in thickness.

These woodblocks were originally kept in Dosanseowon, a Confucian academy dedicated to Gwon Deuk-gi and Gwon Si. After the academy was demolished following a nationwide decree in 1868, the woodblocks were relocated for safekeeping. Presently, they are kept at the entrance to Gwon Si's tomb in Sungmogak Hall, built in 1987.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 권득기(1570-1622, 호 만회)와 아들 권시(1604-1672, 호 탄옹)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판이다.

두 사람 모두 학문에 뛰어났으며,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권득기는 1589년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광해군(재위 1608-1623)의 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한 후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권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잠시 관직생활을 한 이후에는 탄방동 지역에 서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권득기의 문집 『만회집』은 1630년 아들들이 수습한 시와 산문을 1712년 증손자인 권이진(1668-1734)이 제작한 것이다. 현재 목판 328매가 남아 있으며, 책판의 크기는 가로 51cm, 세로 27.5cm, 두께 3.8cm이다.

권시의 문집 『탄옹집』은 권시가 직접 정리한 글들을 손자인 권이진과 증손자 권정징(1697-1758)이 1738년에 간행한 것이다. 현재 목판 282매가 남아 있으며, 책판의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28.2cm, 두께 3.8cm이다.

이 목판들은 원래 권득기와 권시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도산서원에 보관되어 있었다. 1868년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서원이 훼철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987년 권시의 묘역 입구에 숭모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