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루
청원루 Cheongwollu House |
|
대표명칭 | 청원루 |
---|---|
영문명칭 | Cheongwollu House |
한자 | 淸遠樓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199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10월 1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
해설문
국문
이 건물은 김번(金璠, 1479~1544)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 후 병자호란 때 인조(仁祖)의 강화를 반대한 척화론(斥和論)의 거두인 예조판서(禮曹判書) 김상헌(金尙憲)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후 인조 21년(1643)에 중건하였다.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의미에서 청원루라는 당호를 붙였다고 한다.
본래는 2채의 건물이 41칸의 규모였으나 1934년 홍수로 무너지고 1채만 남아 있다. 몸채 부분은 기단을 높게 한 단층 다락집 형태이며, 대청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영문
This traditional Korean house was first built in the 15th century by Kim Beon (1479-1544),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as a retirement home. The house was reconstructed in 1643 by his descendant Kim Sang-heon (1570-1652), who served as Minister of Rites during the reign of King Injo (r. 1623-1649).
When the Manchu Invasion broke out in 1636, Kim Sang-heon strongly opposed the humiliating negotiations with the invaders and was taken to Qing China as a hostage for six years. After he came back to his hometown, he rebuilt this house and named it “Cheongwollu,” meaning “House of Staying Far from Qing.”
The house originally consisted of two buildings, but one of them was destroyed by a flood in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