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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부인 권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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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5월 17일 (일) 17:54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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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부인 권선문
Gwonseonmun (Words to Encourage Good Deeds) by Lady Seol
설씨부인 권선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설씨부인 권선문
영문명칭 Gwonseonmun (Words to Encourage Good Deeds) by Lady Seol
한자 薛氏夫人 勸善文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728호
지정(등록)일 1981년 7월 15일
분류 기록유산/서간류/간독류/간독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첩(18폭)
웹사이트 설씨부인 권선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문첩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신말주의 부인 설씨(1429~1508)가 지은 권선문과 사찰도를 병풍처럼 묶은 것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데 불만을 품고 낙향한 신말주를 따라 고향으로 내려 온 부인은,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허물어진 강천사 부도암을 다시 세우기로 결심한다. 이에 설씨부인은 권선문을 짓고 사찰도를 그려 신도들에게 돌려보도록 하였다. 붉은 종이를 이어 붙인 16폭 가운데 14폭이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이다. 문첩 뒷면에는 권선문을 짓게 된 이유와 연대 등이 적혀있다. 이 문첩은 조선시대 여류문인이 쓴 가장 오래된 필적으로 권선문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문첩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의 부인 설씨(1429~1508)가 지은 권선문(勸善文)과 사찰도를 병풍처럼 묶어 제작한 것이다.

설씨부인은 1482년 봄에 신비로운 꿈을 꾸고 난 뒤 직접 선(善)을 권하는 글인 권선문을 지었다. 그리고 이 지역 강천산에 있는 강천사를 복원하기 위해 사찰의 그림을 채색한 사찰도를 그렸다. 이 권선문과 사찰도를 승려 약비(若非)로 하여금 신도들에게 돌려 시주를 구하게 하였다.

이 문첩은 1첩 16폭의 병풍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기로 된 것을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한 폭에 4행 또는 5행으로 된 첩지를 16폭으로 나누어 병풍과 같이 접어 두는 족자로 만든 것이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으며, 뒷면에는 후손들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편지글과 권선문이 쓰여 있다.

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류 문인이 쓴 필적으로는 가장 오래되었고, 사대부 집안의 부인이 쓴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이라는 점에서 불교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또한 조선전기 사대부 집안 여인이 사찰을 재건하는 불사에 관심을 보인 일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차 수정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의 부인 설씨(1429~1508)가 지은 권선문(勸善文)과 사찰도를 병풍처럼 묶어 제작한 문첩이다.

설씨부인은 1482년 봄에 신비로운 꿈을 꾸고 난 뒤, 이 지역에 있던 사찰인 강천사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시주를 권장하는 권선문을 직접 지었고, 사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신도들에게 돌려보도록 했다.

이 문첩은 1첩 16폭의 병풍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기로 된 것을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16폭으로 나누어 병풍과 같이 접어 두는 족자로 만든 것이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으며, 뒷면에는 후손들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편지글과 권선문이 쓰여 있다.

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류 문인이 쓴 필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조선 전기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 사찰을 재건하는 불사에 관심을 두고,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을 썼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조선 전기 문신 신말주(申末舟, 1429~1503, 본관; 고령, 신숙주 동생)의 부인 설씨(1429~1508)가 지은 선(善)을 권장하는 글과 사찰도를 병풍처럼 제작한 문첩이다.
    • 신말주는 세조의 집권에 반대하여 부인 설씨의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신말주와 함께 순창에 있던 설씨는 1482년(성종 13) 봄에 신비로운 꿈을 꾸고 강천사를 복원하기로 결심하였다.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장하는 권선문(勸善文)을 짓고, 사찰의 모습을 그려 신도들에게 보여주었다.
    •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기였는데,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1첩 16폭의 병풍 형식으로 만들었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후손들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편지글과 권선문이 쓰여 있다.
    • 조선 전기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 사찰을 복원하는 불사에 관심을 두었고,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을 작성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수정사항 없음.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여류문인’이라는 표현보다는 ‘여성문인’이 적합합니다.

2차 수정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의 부인 설씨(1429~1508)가 지은 권선문(勸善文)과 사찰도를 병풍처럼 묶어 제작한 문첩이다.

설씨부인은 1482년 봄에 신비로운 꿈을 꾸고 난 뒤, 이 지역에 있던 사찰인 강천사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시주를 권장하는 권선문을 직접 지었고, 사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신도들에게 돌려보도록 했다.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기였는데,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1첩 16폭의 병풍 형식으로 만들었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후손들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편지글과 권선문이 쓰여 있다.

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성 문인이 쓴 필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조선 전기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 사찰을 복원하는 불사에 관심을 두었고,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을 썼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정훈, 「귀래정 신말주 연구」, 『한국언어문학』 92, 한국언어문학회, 2015.
  • 『세조실록』, 『성종실록』
  • 『귀래정 실기』, 귀래정 실기 간행 위원회, 1994.
→ 기존 안내문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신말주에 대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낙향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455년(세조 1) 계유정난의 공으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1456년(세조 2)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간원 우정언, 1459년(세조 5) 종사관, 사간원 우헌납, 1461년(세조 7) 예조 정랑, 1464년(세조 10) 사간원 사간, 1466년(세조 12) 사간원 대사간, 형조 참의, 1476년(성종 7) 전주부윤, 1479년(성종 10) 진주목사 이후 창원부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 첨지중추부사, 전라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순창에 머문 시간은 부인의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낙향한 1470년(성종 1)부터 다시 기록에 등장한 1476년(성종 7)까지 대략 7년 정도의 기간과 70세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난 1498년부터 죽음을 맞이한 1503년까지 6년 정도의 기간이다 .
결론적으로 그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은 절의의 인물이 아니고, 권선문이 제작된 시기인 1482년(성종 13)에 순창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그의 절의와 은거하는 선비의 이미지는 그와 친분이 있고 세조 정권에 참여하였던 서거정과 강희맹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거정은 신말주가 지은 정자인 귀래정에 대해 「귀래정기」를 지어 주었고, 강희맹은 「전주부윤귀래정공신도비명」을 지어 주었는데, 신말주가 세조 즉위 후 낙담하여 낙향하였으나 형인 신숙주의 강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벼슬을 하였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순창을 그리워하고 은거하려 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10대 후손인 신경준은 「유허비명」을 지어 그가 벼슬길에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는 신숙주의 문집이나 연대기 자료에는 볼 수 없는 기록으로 세조 정권 당시 관직에 나아간 신말주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쓴 글이다.
그러므로 기존 안내문에 있는 신말주에 대한 설명은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