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동헌
김제동헌 Magistrate’s Office of the Gimje Local Govern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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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제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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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agistrate’s Office of the Gimje Local Government |
한자 | 金堤東軒 |
주소 | 전북 김제시 동헌4길 46-1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9월 2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김제 동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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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동헌은 조선시대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건물이다. 김제 동헌은 16세기 중반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현종 8년(1667)에 수령으로 부임한 민도가 근민헌*으로 이름을 붙였고, 숙종 25년(1699)에 수령으로 부임한 이세성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사칠헌**이라고 불렀다. 고종 18년(1881)에 중건되었고,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읍사무소로 사용하였다.
건물 내부는 마루로 되어 있고 왼편에는 1984년에 복원한 온돌방이 있다. 동헌이 관아의 중심건물이었던 만큼 사용한 부재나 꾸밈에 장식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 동헌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내아와 함께 남아 있어 관아 건축물 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이다.
- 근민헌(近民軒): 백성을 가까이 하는 곳이라는 뜻
- 사칠헌(事七軒): 7가지 공부(호적,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를 맡아보는 관아라는 뜻
영문
Magistrate’s Office of the Gimje Local Government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 김제군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16세기 중반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667년 수령으로 부임한 민도(1607-1684)가 ‘백성을 가까이 하는 곳’이라는 뜻의 ‘근민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1699년 수령으로 부임한 이세성(1642-1721)이 건물을 중수하면서 ‘7가지 공공의 업무(호적,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를 맡아보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칠헌’이라고 불렀다. 1881년에 또 중건되었고 1960년대 초까지는 읍사무소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는 마루로 되어 있고 왼편에는 1984년에 복원한 온돌방이 있다. 동헌이 관아의 중심건물이었던 만큼 사용한 부재나 꾸밈에 장식적인 면모가 많다.
참고자료
- 최근 사진정보(2020년) https://blog.naver.com/jiyouls/221855576766
- 정밀실측 조사보고서 - 김제군 관아와 향교 , 문화재청, 2012.
- 한시들이 지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 주로 언급되는 시는 김주(1512∼1563)의 한시.(寓庵先生遺集卷之三, <金堤東軒韻> - 賓主相逢處。團欒雜戲談。故人憐洛北。行色惜湖南。咄咄詩成五。堂堂月已三。歸來休更唱。攬轡面生慙.) 보고서 등에서 언급한 ‘1500년대 중반’ 소급의 근거가 됨. 이 시 외에도 소세양과 송인수의 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