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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동 백자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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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동백자가마터
정생동 백자가마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정생동백자가마터
한자 政生洞白磁窯址
주소 대전 중구 정생동 산7-1번지
지정(등록) 종목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6호
지정(등록)일 1997년 11월 7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정생동 백자가마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생동 백자 가마터는 16세기 후반에 운영되었던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1997년에 발굴조사를 하여 백자 가마터 1기와 작업시설 3기, 폐기장이 확인되었다. 가마는 남북의 자연 경사면을 따라 바닥 경사도가 약 20° 내외인 반지하식 오름가마이며, 총길이는 약 26m이다.

가마는 아궁이, 소성실(燒成室), 굴뚝의 전체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그릇을 굽는 소성실은 너비 약 2.6m, 높이 약 1m인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2개씩의 커다란 불창 기둥이 있어 전체가 5개의 방으로 구분된다. 각 방의 오른쪽 벽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1개씩 설치되어 있다.

이 가마터에서는 대접·접시·종지 같은 반상기가 주로 출토되었고, 항아리와 병 등 제사에 쓰는 그릇도 확인되었다. 유물의 시간적인 변화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16세기 후반 백자를 생산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가마터이다.

1997년에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가마터 1기와 작업장 3기, 폐기장 1곳이 확인되었다.

가마는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깊게 땅을 파고 천장 부분을 진흙으로 덮어씌워 열효율을 높였다. 도자기를 구워내는 공간 내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창 기둥을 2개씩 설치하여 6개의 방을 구획하였으며, 각 방의 오른쪽 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를 설치하였다.

아궁이는 길고 턱이 낮으며, 굴뚝 주변에는 큰 돌 14개를 타원형으로 돌려 쌓았다. 이는 비가 올 때 굴뚝 안으로 흙이 밀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기의 작업장 사이에는 편평하고 긴 돌들을 타원형으로 배치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각각 구석에서 열을 가한 흔적이 남아있어 건조를 위한 시설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마터에서는 대접·접시·종지 같은 반상기가 주로 출토되었고, 항아리와 병 등 제사에 쓰는 그릇도 확인되었다. 가마 전체길이는 약 26m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