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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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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소루
봉소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봉소루
한자 鳳巢樓
주소 대전 중구 봉소루로 29 (석교동)
지정(등록) 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호
지정(등록)일 1992년 10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봉소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봉소루(鳳巢樓)는 조선 중기의 학자 남분붕(南奮鵬)이 세운 누각이다. ‘봉소(鳳巢)’는 ‘새들의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남분붕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숙우(叔雨), 호는 봉소재(鳳巢齋)다.

이곳에는 봉소루를 비롯하여 관리사, 문간채, 비각 등이 있다.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마당의 양쪽으로 동쪽에 봉소루, 서쪽에 관리사가 있으며, 관리사의 북쪽에는 비각이 있다. 봉소루는 ‘ㄱ’ 자형 평면에 앞면 4칸, 옆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간에 온돌방을 배치하고 남쪽에 대청마루를 두었고, 북쪽은 2칸의 중층 누각으로 만들었다. 관리사는 ‘ㄱ’ 자형 평면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과 남쪽 끝에 부엌을 두었다. 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누각을 처음 건립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의 생존 시기로 보아 17세기 병자호란 후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조선 숙종 40년(1714)과 영조 34년(1758)에 중수하였다. 1972년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으나 18세기 누각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솟을삼문: 문이 세 칸인 맞배지붕의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좌우 대문보다 한 단 높게 세운 대문.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학자 남분붕(1605-1674, 호 봉소재)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처음 지어진 시기는 17세기로 추정된다. 1717년과 1758년에 고쳐 세웠다고 하며, 1972년에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건물은 안채와 누각이 연결되어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며, 마당 오른편에 있다.

안채는 중간에 온돌방이 있고 왼쪽에 대청마루가 있고, 기단 위에 둥근 돌기둥을 세워 2층으로 올린 누각이 왼쪽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이외에도 부엌이 있는 관리사와 남분붕의 유허비가 있는 비각이 있다.

건물의 이름인 봉소(鳳巢)’는 남분붕의 호를 딴 것으로, ‘새들의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 봉소루 앞에 하마석이 있음. 봉소루가 올려다 보이는 남쪽 150여m 떨어진 곳에 있던 것을 봉소루 경내로 이전한 것이라고 함.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