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나성
부여 나성 Outer City Wall, Buy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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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여 나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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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Outer City Wall, Buyeo |
한자 | 扶餘 羅城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 565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58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397,533㎡ |
웹사이트 | 부여 나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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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부여 나성
나성은 성곽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성을 이르는 말로, 부여 나성은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부여시가지 외곽을 넓게 둘러싼 방어시설로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축조된 외곽성이라는 점에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긴 538년을 전후하여 쌓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현재 확인된 나성의 총 길이는 6.6㎞이다.
부소산성을 기점으로 동쪽의 청산성을 경유하여 그 남쪽의 석목리, 능산리를 거쳐 백마강까지 부여읍시가지의 북쪽과 동쪽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부여읍시가지의 서쪽과 남쪽은 백마강이 자연적인 방어벽 기능을 하였고 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자연제방이 성벽 역할을 대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나성 발굴지
부여나성은 사비도성을 보호하고 그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부여읍 시가지 북-동쪽을 반달처럼 감싼 형태로 그 길이는 6.6㎞에 달한다.
사비도성 내 위치에 따라 북나성, 동나성, 서나성, 남나성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현 위치인 북나성은 부소산성(사적 제5호) 북문지 동쪽에서부터 청산성(사적 제59호) 동사면 끝자락까지 약 1㎞ 달하는 구간에 해당한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총 9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조사결과 나성 성벽과 치* 1개소, 청산성 정상부에서 다수의 건물지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2018년 조사에서 금동보살입상과 백제시대 성벽이 확인되어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도 북나성은 ‘백제왕도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일환으로 학술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 치(雉): 성벽 일부를 도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
부여 정동리 506-2‧3번지 유적
부여 나성 중 동나성 구간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2012년 발굴조사를 통해 6~7세기 사비나성과 연결된 도로 유적 등이 확인되었고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6년 사적 제58호 부여 나성으로 추가 지정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6~7세기의 백제시대 도로유구를 비롯하여 수로 3기, 경작유구 1기, 적석유구 2기, 저습지 1개소 등이 조사되었고 조족문토기*, 벼루, 뚜껑 등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중 도로유구는 북동-남서향으로 서쪽 연장부분이 나성의 추정 성문지로 연결되고 있어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로 통하는 주요 도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조족문(鳥足文)토기: 새 발 모양의 문양을 새긴 토기
영문
Outer City Wall, Buyeo
This outer city wall is a defense facility constructed to protect the royal palace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and the city center of its capital. It is presumed to have been constructed in 538 when Baekje moved its capital to Sabi (today’s Buyeo area) and has great historic value in that it was the first city center fortress built in Korean history.
Currently, the excavated outer city wall measures 6.6 km in length. The walls were made covered with soil, using the natural terrain, and start from Busosanseong Fortress located north of the royal palace, pass through Cheongsanseong Fortress eastward of Busosanseong Fortress, southward through Seokmok-ri and Neungsan-ri to Baengmagang River. The outer city wall had the role of guarding the northern and eastern area of Buyeo’s capital, whereas the Baengmagang River had the role of a natural defense wall for the southern and western area of the capital.
Excavation Site of Northern Outer City Wall
The outer city wall is a fortress constructed in 538 to protect the royal palace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and the city center of its capital. Currently, it envelops the north and east area of Buyeo’s downtown like a half moon, measuring 6.6 km in perimeter.
The Northern Outer City Wall is the one-kilometer part from the eastern area of the Busosanseong Fortress (Historic Site No. 5)’s north gate site to Cheongsanseong Fortress (Historic Site No. 59). From 2011 to 2019, 9 excavations were conducted, through which the walls (?) of the outer city wall, one bastion, and many building sites around the summit of Cheongsanseong Fortress were discovered. In particular, when a gilt-bronze standing bodhisattva and walls of the Baekje period were found in 2018, it received great attention.
Historic Site No. 506-2‧3 in Jeongdong-ri, Buyeo
The outer city wall is a fortress constructed in 538 to protect the royal palace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and the city center of its capital. Currently, it envelops the north and east area of Buyeo’s downtown like a half moon, measuring 6.6 km in perimeter.
This site refers to the southern part of the Outer City Wall, Buyeo. In 2012, various historic sites related to the Outer City Wall, Buyeo, were discovered through an excavation survey and in recognition of the significance of this historic site since then, in 2016, it was included in the protected area of Historic Site No. 58, Outer City Wall, Buyeo.
At this site, road structural remains, three waterpipes, one trace of land cultivation, two stone-mounded structural remains, and one wetland dating back to the 6th and 7th centuries, were found, and artifacts such as earthenware carved with bird foot designs and inkstones were excavated. In particular, since the west edge end part of the road structural remains is connected to where the gate site of the Outer City Wall is presumed to have been, it is estimated to have been an important road connecting Ungjin (today’s Gongju area) area with Sabi (today’s Buyeo area) area.
- The English expression “historic site” refers to both 유적 and 사적 in Korean
영문 해설 내용
부여 나성
나성은 백제의 왕궁과 수도 외곽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방어시설이다.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긴 538년 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축조된 외곽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현재 확인된 나성의 총 길이는 6.6km이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흙을 쌓아 만들었으며, 왕궁 북쪽에 위치한 부소산성에서 출발하여 부소산성 동쪽의 청산성을 지나 남쪽의 석목리, 능산리를 거쳐 백마강까지 이어진다. 나성이 부여 수도의 북쪽과 동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한 반면, 수도의 남쪽과 서쪽은 백마강이 자연적인 방어벽 기능을 하였다.
북나성 발굴지
나성은 백제의 왕궁과 수도 외곽을 보호하기 위해 538년 경에 쌓은 성곽이다. 현재 부여 시가지의 북쪽과 동쪽을 반달처럼 감싼 형태이며, 전체 길이는 6.6km에 달한다.
북나성은 부소산성(사적 제5호) 북문지의 동쪽에서부터 청산성(사적 제59호)까지 약 1km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총 9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졌고, 나성의 성벽, 치 1개소, 청산성 정상부의 건물지 다수를 확인하였다. 특히 2018년에는 금동보살입상과 백제시대의 성벽이 확인되어 주목을 받았다.
부여 정동리 506-2‧3번지 유적
나성은 백제의 왕궁과 수도 외곽을 보호하기 위해 538년 경에 쌓은 성곽이다. 현재 부여 시가지의 북쪽과 동쪽을 반달처럼 감싼 형태이며, 전체 길이는 6.6km에 달한다.
이곳은 부여 나성 중 동나성 구간에 해당한다. 2012년 발굴조사를 통해 부여 나성과 관련된 여러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이후 이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6년 사적 제58호 부여 나성의 지정구역에 포함되었다.
이곳에서는 6-7세기의 도로 유구, 수로 3기, 경작 유구 1기, 적석 유구 2기, 저습지 1개소 등이 발견되었고, 유물로는 새 발 문양을 새긴 토기, 벼루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도로 유구는 서쪽 끝 부분이 나성의 성문지로 추정되는 곳과 연결되어 있으며,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과 사비(지금의 부여)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갤러리
사비도성과 부여나성[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