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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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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역지
Geumjeongyeok Post Station Site
대표명칭 금정역지
영문명칭 Geumjeongyeok Post Station Site
한자 金井驛址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용당리 용곡 일원
지정(등록) 종목 청양군 향토유적 제14호
지정(등록)일 2018년 1월 12일



해설문

국문

역(驛)은 관리 인원을 두고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공무(公務)로 인한 여행자에 대한 필마(匹馬)제공 및 숙식, 중요 군사정보 전달 등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역제(驛制)는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전국적 규모로 역이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이고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면서 한양을 기점으로 역로망을 형성, 발전시켰다. 조선시대에 충청도는 좌도와 우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금정도(金井道)는 우도에 속한 대표적인 역도(驛道)로 금정역(金井驛)을 포함하여 9개 의 역을 관할하였다. 금정도는 청양군 남양면 금정리에 소재하였는데, 1614년(광해군 6)에는 ‘충청우도 중 시흥도’를 통합하면서 현재의 화성면 용당리 용곡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 현재 용곡 마을 상당수가 당시 금정역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금정역에는 종6품인 찰방(察訪)을 파견하여 관리하였는데 1795년(정조 19) 정약용이 금정역 찰방으로 약 6개월 간 재임하였다. 재임기간 중에는 6개월간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인 『금정일록(金井日錄)』을 남겼다. 금정역 찰방은 1895년 역원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현재는 용당리 입구에 ‘금정도찰방 비석군이’이 자리하고 있다.

영문

Geumjeongyeok Post Station Site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