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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무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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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5월 2일 (토) 11: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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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무진정
Mujinjeong Pavilion, Haman
대표명칭 함안 무진정
영문명칭 Mujinjeong Pavilion, Haman
한자 咸安 無盡亭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58호
지정(등록)일 1976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안 무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9

무진정은 무진(無盡) 조삼(趙參)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567(명종 22)에 세운 정자이다. 그는 17세인 1489년에 진사시 합격하여 함양·창원·대구·상주 등에서 지방관을 지냈고, 중앙에서는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정자는 임진왜란 무렵에 불타 없어졌는데 1929년 그의 후손들이 다시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진정은 출입문인 동정문(動靜門)과 정면 3칸의 정자로 이루어졌다.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방과 툇마루에는 개방이 가능한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을 더하였다. 이런 양식은 전라도 지역과 인근의 함양․거창 지역에서 흔히 보인다. 무진정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

무진정은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영․호남 정자 문화의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2020

무진정은 1542년 조삼(趙參)선생(1473~1544)이 후진양성을 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17세인 성종20년(1489)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2년(1507)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에서 지방관을 지냈고, 중앙에서는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손자이다. 독서를 좋아한 올곧은 성격으로 성균관의 생원일 때 연산군 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을 처벌하자는 상소를 올려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정자는 출입문인 동정문(動靜門)과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방과 툇마루에는 개방이 가능한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을 더하였다.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준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다시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서원인 소수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이 무진정 기문을 지었으며, 무진정 정자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

영문

Mujinjeong Pavilion, Haman

This is a pavilion commemorating Jo Sam (1473-1544, pen name: Mujin),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first built in 1567 by his descendants.

Jo Sam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89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also served as a provincial governor for the Gyeongsang-do area in order to take care of his father who lived there.

The original pavilion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but his descendants reconstructed it in 1929. The current pavilion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surrounded by narrow wooden verandas on each side of the hall. The pavilion is named after Jo’s pen name.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인 조삼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정자이다. 1567년 그의 후손에 의해 지어졌다.

조삼은 1489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하여 경상도 지역의 지방관을 지내기도 했다.

원래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1929년 후손들이 정자를 새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가운데에 마루방이 있고 사방이 툇마루로 둘러싸여 있다. 정자의 이름은 조삼의 호를 따라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