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사직단
고성 사직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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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고성 사직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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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固成 社稷壇 |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296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1월 3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
수량/면적 | 598 |
웹사이트 | 고성 사직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고성읍 교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직단이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으로 농경사회인 조선에서 신성하게 여겼던 공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고성현에는 고성의 사직단이 “현(縣)의 서쪽에 있다.”고 했으며, 이후 조선 후기에 발행된 『고성현읍지』와 『경상도읍지』 등도 “현의 서쪽 5리에 있다.”고 기록했다. 1893~1894년 고성부사 오횡묵(吳宖默)의 일기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는 고성부사가 사직단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의 제물과 제관, 날씨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한 고성 사직단이 있는 교사리(校社里)의 지명은 향교가 있던 교동(校洞)과 사직단이 있던 사동(社洞)에서 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조사결과, 동서 약 5m, 남북 약 4.2m의 제단과 이를 둘러싸는 20여m의 담장, 남쪽의 출입구 등이 확인되었다.
- <고성신문>에 의하면 2019년 당시 복원 계획 중인데, 현재 복원 중인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사직단은 과거 농경사회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나라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던 곳이다. 사직단은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각 행정단위마다 사직단을 건립하여 봄과 가을에 제례를 올리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300여 개의 사직단이 존재하였으나, 1908년 일제의 강압으로 대부분이 철폐되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고성 사직단,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2960000
- (재)삼강문화재연구원, 고성 사직단-학술조사보고서-, 2017. http://archives.gyeongnam.go.kr/00079/00141.web?amode=view&idx=4437&
- “고성사직단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복원사업 박차”, 『고성신문』 2019년 1월 11일.
http://www.gosnews.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447&idx=2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