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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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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흥국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흥국사
한자 興國寺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길 160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지정(등록)일 1984년 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흥국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1)여수 흥국사

조계종 화엄사에 딸린 말사로, 1196년(고려 명종 26년)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 지눌이 수행할 곳을 찾다가 ‘여기에 절을 지으면 나라가 흥한다’는 신령한 노승의 말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흥국사’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법당과 요사가 완전히 불타 버린 것을, 1642년(인조 2년) 계특선사가 다시 지었다.

백두대간 끝자락 지리산에서 여수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한 갈래인 진례산과 영축산이 연꽃처럼 감싸고 도는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무사전 등 목조 건물들과 대웅전후불탱, 노사나불괘불탱, 수월관음도, 십육나한도, 홍교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흥국사는 호국삼부경 가운데 특히 법화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뒷산 이름이 법화경이 설법되었던 인도의 영축산과 같은 점이 그 예이다. 임진왜란때에 크게 활약한 의승 수군의 본거지로서 호국불교의 성지로 불린다.


2)여수(麗水)의 불교문화(佛敎文化)

흥국사는 우리나라 호국 불교의 성지이다. 보조국사 지눌은 이 절을 창건하고, 무인정권의 압제에 피폐해진 승려들로 하여금 ‘수행과 실천’을 위한 모임인 정혜결사(淨慧結社)를 태동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이 관할하던 전라좌수영의 의승 수군본부였다. 당시 자운과 옥형 두 스님이 창설한 흥국사 의승 수군은 관군 못지 않은 훈련과 지휘 체계를 갖추고 왜군과 싸웠다. 전쟁이 끝나자 선조 임금은 이곳에 쌀 600석을 보내와 전사한 수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제를 지냈다.

여수에는 호국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곳 흥국사를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 옆에 공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암자 석천사, 흥국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과 관련이 있는 향일암, 은적암, 한산사 등의 전통 사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1)여수 흥국사

흥국사는 1195년 고려의 승려 지눌(1158-1210)이 ‘나라가 흥하면 절이 흥하고,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한다’는 염원을 담아 영취산 중턱에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전소된 것을 1560년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다시 소실되었으며, 1624년 계특대사에 의해 가람이 중창된 이후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보물 10점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들과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훈련하던 자리가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 흥국사는 스님들이 조직한 의병 수군의 훈련소이자 근거지가 되었다. 자운과 옥형 두 승장의 지휘 하에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바다를 지킨 승병들은 전쟁 후에도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국가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가 강했던 흥국사는 전란 이후로도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던 기도처로의 역할을 하는 호국 불교의 성지로 자리하게 되었다.

흥국사 터는 지리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중 진례산과 영취산이 연꽃처럼 감싸 도는 모양으로 산세가 매우 아름답다. 지눌이 전라도를 다니며 절터를 물색하던 중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보냈더니 이 곳에 사뿐히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 절 입구에는 곡우일(24절기 중의 하나)에 맞춰 전사한 스님들에게 제를 지내기도 했었던 청혼총이 있다.
  • 경내에 유물 8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는 의승수군 유물전시관이 있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다.


2)여수(麗水)의 불교문화(佛敎文化)

지눌이 ‘수행과 실천’을 위한 모임인 정혜결사(淨慧結社)를 태동시키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알려진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 스님들이 조직한 의병 수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1592년 자운과 옥형 두 스님의 주도로 모인 의승 수군은 스스로 군량을 조달해 가며 당시 이 지역을 관할했던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왜군과 싸웠다.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며 세워진 절인 흥국사는 전쟁이 끝나고 사찰로 돌아 온 승려들을 중심으로 1만일 동안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만일염불회가 시작되는 등 전란 이후로도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기도처로의 역할을 하며 호국 불교의 성지로 자리를 잡았다.

여수에는 흥국사 외에도 이름 난 관음 기도처인 향일암은 기암절벽에 위치해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하며,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 옆에는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암자 석천사가 있다. 지눌이 세운 또 다른 암자인 은적암과 신라의 고찰로 알려진 용문사, 여수 8경의 하나를 차지하는 한산사 등 여러 전통 사찰들이 있다.

  • 1980년대 이후 최근 여수 불교계의 동향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사찰 혹은 승려들의 조직화이며, 다른 하나는 복지 사업에의 적극적 참여다.
  •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썼다는 흥국사 공북루(拱北樓) 현판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으며 충무공은 공북루에 올라 대궐을 향해 망궐례를 행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300여 명의 의승수군이 조직되어 민심수습을 위한 복구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선조 임금은 이곳에 쌀 600석을 보냈으며, 이것으로 전사한 수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수륙제를 지냈다.

참고 자료

→흥국사 내력

→지눌 관련 일화

→호국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