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당고택
해우당고택 Haeudang 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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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해우당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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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aeudang House |
한자 | 海愚堂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 238-2 (수도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2호 |
지정(등록)일 | 1990년 8월 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해우당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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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해우당 고택은 예안(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金臺)의 셋째 손자 김영각(金永珏)이 1830년에 건립하였고,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金樂灃)이 고종 16년(1879)에 중수한 살림집이다. 김낙풍의 증손자로 이 지역 항일 운동 지도자였던 김화진(金華鎭)의 생가이기도 하다. ‘해우당’이라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도 유명하다.
이 고택은 평면이 ‘ㅁ’ 자 모양인 기와지붕 집으로, 앞면 6칸, 옆면 6칸 규모로 무섬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다. 중앙에 안마당, 앞쪽에 ‘一’ 자 모양의 사랑채, 뒤쪽에 ‘ㄷ’ 자 모양의 안채가 있다. ㅁ자 모양 집은 남녀를 구분하는 유교의 생활 원리를 반영한 구조이다. 개방적인 공간인 사랑채는 남성, 폐쇄적인 공간인 안채는 여성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사랑채에는 오른쪽부터 손님을 접대하는 큰 사랑방, 구들이 없는 마루방,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인 중문, 작은 사랑방이 있다. 안채에는 오른쪽부터 안주인이 사용하는 안방, 큰 마루인 대청,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상방이 있다. 안방 앞에는 부엌과 책방이 있고, 상방 앞에는 부엌, 신혼부부가 첫날밤에 보내는 목방, 물건을 넣어 두는 고방을 두었다.
해우당 고택은 조선 시대 후기의 ‘口’ 자 모양 살림집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 시대 가옥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의금부도사: 조선 시대에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심문하던 의금부의 책임자. 5-6품 관리
영문
Haeudang House
영문 해설 내용
해우당은 예안김씨의 무섬마을 입향조인 김대(1732-1809)의 손자 김영각(1809-1876)이 1830년에 지은 살림집이다. 김영각의 조카이자 양자였던 김낙풍(1825~1900, 호:해우당)이 1879년에 집을 중수하면서 자신의 호를 따라 집의 이름을 해우당으로 하였다. 무섬마을 내 항일운동의 근거지였던 아도서숙 설립을 주도한 항일운동가 김화진(1904-1946)의 생가이기도 하다.
무섬마을 입구에 위치한 이 집은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이다. 앞쪽에 ㅡ자형의 사랑채와 뒤쪽의 ㄷ자형의 안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개방적인 형태로 만들고 안채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서, 남녀를 구별하는 유교 사상을 반영하였다.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고, 맨 오른쪽에는 마루방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두 방 앞에는 누마루를 두고 난간을 둘렀다.
안채에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고, 안방인 오른쪽 방 앞에는 부엌이 있다. 대청에는 ‘해우당’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고종(재위 1863-1907)의 아버지였던 흥선대원군(1820-1898)의 친필이다. 흥선대원군은 김낙풍과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현재 해우당은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