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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덕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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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덕산고택
Deoksan House, Yeongju
영주 덕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주 덕산고택
영문명칭 Deoksan House, Yeongju
한자 榮州 德山古宅
주소 경북 영주시 이산면 영봉로 885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9호
지정(등록)일 2007년 11월 1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4동)
웹사이트 영주 덕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덕산 고택은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덕산 김경집이 영조 32년(1756)에 두암 마을에서 두월 마을로 옮겨오면서 지은 살림집으로, 자신의 호를 따라 덕산정이라고 하였다. 김경집은 정조 3년(1779)에 덕산 고택 왼쪽에 괴헌 고택을 지었는데, 이때 덕산 고택 뒤쪽에 서당을 세워 인근 후학들에게 배움의 터로 제공하였다. 이후 후손인 김희연이 대한제국 시기인 광무 8년(1904)에 집 일부를 수리하였다고 전한다.

덕산 고택은 앞면 6칸, 옆면 6칸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 평면이 ‘ㅁ’ 자 모양인 기와지붕 집으로 중앙에 안마당, 앞쪽에 문간채와 사랑채, 뒤쪽에 안채가 있다. ‘ㅁ’ 자 모양 집은 남녀를 구분하는 유교의 생활 원리를 반영한 구조이다. 개방적인 공간인 사랑채는 남성, 폐쇄적인 공간인 안채는 여성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덕산 고택은 살림집으로는 드물게 서당을 갖추고 있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통행이 편리하도록 은밀한 통로를 두었고, 물건을 넣어두는 곳간에 마루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요소는 조선 후기 양반의 생활과 살림집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원래 두월리에 있었으나 영주댐 건설로 현재 위치로 옮겼다.


  • 첨지중추부사: 조선 시대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의 무관

영문

Deoksan House, 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