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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고곡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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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고곡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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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고곡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고곡산성
영문명칭 0
한자 昌寧 鼓谷山城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 산 193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
지정일 1983년 8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87,273㎡
웹사이트 창녕 고곡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고곡산성은 구진산해발 307.9m 자락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낮은 야산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1997년 이전까지 구진산성(九鎭山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1997년 지표조사 이후 서쪽의 구진산 정상부에 있는 산성을 구진산성으로, 이 산성은 마을 이름을 붙여 고곡산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고곡산성의 둘레는 542.5m, 성벽의 너비는 약 5.2m이고 평면형태는 타원형에 가깝다. 성벽은 내ㆍ외벽을 모두 돌로 쌓아 올린 협축식 성벽이다. 외벽은 하부에 삼각형 기단보축(基壇補築)**을 시설하고, 체성은 신라의 일반적인 성벽 쌓기 기술인 바른층 쌓기*** 방식이 적용되었다. 현재 동문 및 동벽과 남벽 일부구간을 복원ㆍ정비한 상태이며, 나머지 구간은 많이 무너져 내려 원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고곡산성은 전형적인 신라 석축산성의 성벽 쌓기 기술을 보이고 있으며, 목마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곡산성은 낙동강에서 내륙으로 진출하는 적을 방어할 뿐 아니라 이 지역을 관할하는 치소로서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탁월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 테뫼식 산성 :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
  • 기단보축 : 성벽 하부의 유실을 막기 위해 건물의 기단처럼 성돌을 덧쌓은 것
  • 바른층 쌓기 : 돌의 면 높이를 일정하게 하여 가로줄눈이 일직선이 되도록 쌓는 방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고곡산성은 구진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낮은 야산(해발 84.5m)을 둘러쌓은 석성이다. 6세기 중반 신라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에 가깝다. 동벽과 남벽 일부 구간 및 동문을 복원해 정비한 상태이며, 나머지 구간은 원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내벽과 외벽을 모두 돌로 쌓아올렸고, 외벽 바깥에 기단을 덧대어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고곡산성은 낙동강에서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방어할 뿐 아니라 이 지역을 관할하는 치소로서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탁월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구진산성’으로 불렸으나 인근에 있는 구진산 정상부의 산성과 혼동되고 있어 1997년에 지표조사 실시 후 마을 이름을 붙여 ‘고곡산성’으로 개칭하였다.

성벽의 둘레는 542.5m, 너비는 5.2m 내외이다.


  • 목마산성 : 6세기 중반 신라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 문지와 외벽 바깥에 기단을 덧대어 쌓은 신라의 영향이 보이기도 합니다. 출토 유물과 축성 기법에 근거하여 창녕이 신라에 통합되고 난 뒤 신라가 낙동강 서쪽의 가야를 방비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