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천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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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천 신도비
Stele of Kim Yong
대표명칭 운천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Kim Yong
한자 雲川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리 294-1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60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이 비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김용(金涌, 1557~1620)의 신도비이다. 김용은 의성김씨로 34세 때 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 검열, 예문관 정언, 예문관 지평을 거쳤으며 편수관(編修官)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안동수성장(安東守城將)을 지냈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갈 때 호종(扈從)하였는데 이때의 전황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문서인 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 보물 제484호를 남겼다.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역임하고 훗날 자헌대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었으며,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이 비는 고종 29년(1892)에 세워졌으며 총 높이 180cm, 가로 72cm, 세로 114cm의 좌대 위에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웠으며, 화강석으로 된 용모양 비머리[螭首]의 높이는 64cm이다. 비문은 이재 권연하(頤齋 權璉夏)가 짓고 김한락(金翰洛)이 썼다. 이 비는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영문

Stele of Kim Yong

This is the stele of Kim Yong (1557-1620),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Kim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90, when he was 34 years old,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the royal court. With the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mobilized a civilian army in his hometown, Andong, and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defense of the Andong area. The next year, he escorted King Seonjo (r. 1567-1608) and the royal family members to refuge near the northern border of the Korean peninsula. His experiences of these events were recorded in his diary entitled Hojong ilgi, which is designated as Treasure No. 484. Later in 1609, he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the Annals of King Seonjo.

This stele was erected in 1892, and was moved from its original location to the present site due to the construction of Imha Dam in 1989. The stele body measures 1.14 m in height and 72 cm in width. The entire stele, including the semi-sphere capstone, measures 1.8 m in he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