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동헌
김제동헌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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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제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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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0 |
한자 | 金堤東軒 |
주소 | 전북 김제시 동헌4길 46-1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9월 2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김제 동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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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곳은 조선시대 김제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맡아보던 청사로 동헌(東軒)이라 하였다. 김제동헌은 조선 현종 8년(1667)에 세워 근민헌(近民軒)이라 칭하여 오다 숙종 25년(1699)에 동헌을 고쳐지어 사칠헌(事七軒)으로 개명하였다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김제읍사무소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기둥, 처마, 지붕에 쓰인 부재나 장식이 장중하여 건물의 높은 품격과 관아의 위계를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관아 중 동헌과 내아가 함께 보존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예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아 2007년 7월 3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근민현이란 편액은 백성에게 가깝게 있는 관청이란 의미로 사적 지정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동헌은 조선시대에 지역에 부임한 관리가 업무를 보던 청사를 뜻한다.
김제 동헌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곳을 배경으로 지은 한시들이 지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1500년대 중반에도 존재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667년 김제에 수령으로 부임한 민도(閔燾, 1607~1684)가 백성을 가까이 하는 건물이라는 뜻의 ‘근민헌(近民軒)’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1699년 수령으로 부임한 이세성(李世晟, 1642~1721)이 건물을 중수하면서 ‘사칠헌(事七軒)’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1881년에 또 중건되었고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읍사무소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는 마루로 되어 있고 왼편에 1984년 복원한 온돌방이 있다. 동헌이 관아의 중심건물이었던 만큼 사용한 부재나 꾸밈에 장식적인 면모가 많다.
현존하는 관아 중 동헌과 내아가 함께 보존되는 경우는 김제 동헌이 유일한 경우이기에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현재의 ‘근민헌’이라는 편액은 2007년 사적 지정을 기념하여 제작한 것이다.
- 20년 4월 사령청 및 사주문 복원공사 완료 예정 / 안내판 내용에 반영해야 할 것인지 고민 필요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자료
- 최근 사진정보(2020년) https://blog.naver.com/jiyouls/221855576766
- 정밀실측 조사보고서 - 김제군 관아와 향교 , 문화재청, 2012.
- 한시들이 지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 이 시는 김주(1512∼1563)의 한시로, 보고서 등에서 언급한 ‘1500년대 중반’ 소급의 근거가 됨. 이 시 외에도 소세양과 송인수의 시가 있음.
寓庵先生遺集卷之三, <金堤東軒韻> - 賓主相逢處。團欒雜戲談。故人憐洛北。行色惜湖南。咄咄詩成五。堂堂月已三。歸來休更唱。攬轡面生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