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우복종택
상주 우복 종택 Ubok Head House, Sa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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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상주 우복 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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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Ubok Head House, Sangju |
한자 | 尙州 愚伏 宗宅 |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우산리)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 |
지정(등록)일 | 2018년 11월 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8동 |
웹사이트 | 상주 우복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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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우복 종택은 우복 정경세의 5세손인 정주원이 1750년대에 지은 집이다. 정경세는 조선 시대에 이름을 떨친 선비이다. 조선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인 존애원을 설립하는 데 힘쓰기도 하였다. 영조가 그의 덕을 기려 이곳 땅을 하사하였다.
우복 종택은 생활 공간 외에도 대산루(對山樓), 계정(溪亭) 도존당(道存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건너편에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ㄷ’자를 이루며 바라보고 있다. 사랑채는 높게 지어져 바깥 경관을 바라볼 수 있어서 산수헌(山水軒)이라고 한다.
영문
Ubok Head House, Sangju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family of Jeong Gyeong-se (1563-1633, pen name: Ubok),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Born in Yul-ri Village (about 16 km to the south*), Jeong Gyeong-s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6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mobilized a local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later in 1598, was promoted to a governor of Gyeongsang-do Province, where he skillfully mitigated the devastation of public welfare after the war. Also, in Yul-ri Village he founded Jonaewon, the first private medical institution of the Joseon dynasty**.
Around the year 1600, Jeong built a small thatched-roof cottage and a pavilion in this village (Usan-ri), where he pursued his studies. Later, his descendant Jeong Ju-won (1686-1756) moved here from Yuil-ri and built this head house in proximity to the cottage. The cottage and pavilion are located 100 m to the right of the house. When the house was finished, together with the detached quarters they were used to receive quests.
- I checked.
- Do we specifically mean Joseon here? Not Korea (the first in Korean history)?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경세(1563-1633, 호: 우복)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정경세는 상주 율리 출신으로 158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598년에는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과 인심을 잘 다스렸다. 특히 조선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인 존애원을 율리에 설립하기도 했다.
정경세는 1600년경 이 마을에 초당과 정자를 짓고 학문을 닦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정경세의 후손인 정주원(1686-1756)이 율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정경세의 초당 옆에 이 집을 지었다. 정경세의 초당과 정자가 지금도 종택 오른쪽 약 100m 떨어진 곳에 남아있다. 이 건물들은 종택이 지어진 후, 종택의 별당과 손님을 대접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