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번남고택
안동 번남고택 Beonnam House,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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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번남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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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eonnam House, Andong |
한자 | 安東 樊南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길 76-5 (의촌리)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268호 |
지정(등록)일 | 2011년 11월 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일곽(1필지) |
웹사이트 | 안동 번남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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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번남 고택은 후손들이 여러 차례 손보고 고쳐서 완성된 집이다. 안채는 퇴계 이황 선생의 9세손으로 호조참판을 지낸 번엄 이동순(樊广 李同淳)이 문과에 급제한 후 1810년경에 건축하였다. 그 뒤 삼척도호부사를 지낸 아들 치옹 휘부(癡翁 彙溥)가 1857년에 북쪽 사랑채 번남정사를 지었다. 없어진 남쪽 사랑채 삼호당(三乎堂)은 상주목사를 지낸 손자 좌산 만윤(左山 晩胤)이 1870년경 세웠다.
고택의 전체적인 모습은 成(성) 자 모양으로 이루어졌다. 건립 당시 99칸으로 영남에서 제일 큰 규모의 집이라고 하였으나 일부가 없어지고 지금은 70여 칸만 남았다. 조선 후기 상류주택으로서 3대 이상 대가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물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안채와 북편사랑채로 통하는 복도는 독특한 편의 기능을 하였다. 또 안채 뒤쪽에 있는 굴뚝은 주택 내에 있는 모든 아궁이의 연기가 이곳으로만 빠져나가게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영문
Beonnam House, Andong
This house is located in Uiin Village, a clan village of the Jinseong Yi Clan. This house served as a venue for performing the clan's ancestral rituals and as a gathering place to discuss family matters.
The women’s quarters of the house was built around the year 1810 by the civil official Yi Dong-sin (1779-1860). In 1857, his son Yi Hwi-bu (1809-1869) built the men’s quarters for his father, and around the year 1870, his grandson Yi Man-yun (1834-1906) expanded the house by adding more buildings. It is said that at the time when Yi Man-yun finished the expansion, it was the largest house in Gyeongsang-do Province. Its design is also said to have been inspired by the royal palace in the capital.
However,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 significant part of the house was destroyed. The gate quarters, women’s quarters, and men’s quarters are the only buildings that survived. In the 1970s, when all traditional houses in Uiin Village were either deconstructed or moved to other places due to the construction of Andong Dam, Beonnam House remained at its original location as it was located at a higher altitude than the other houses.
영문 해설 내용
번남고택은 진성이씨 가문의 가옥이다. 이 집이 위치한 의촌리 의인마을은 진성이씨의 집성촌으로, 이 집은 문중의 제사를 지내거나 대소사를 논의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집의 안채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이동순(1779-1860)이 1810년경에 처음 지었다. 이후 아들인 이휘부(1809-1869)가 1857년에 아버지를 위해 사랑채를 추가로 지었고, 1870년경에는 손자인 이만윤(1834-1906)이 다른 건물들을 추가하여 증축하였다. 이만윤이 이 집을 완공했을 당시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이었다고 하며, 창덕궁을 모방하여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집의 상당부분이 소실되었고, 현재는 대문채, 중문채, 안채, 사랑채가 남아있다. 1970년대의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의인마을에 있던 전통 가옥들은 모두 철거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번남고택만이 유일하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