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팔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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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2월 31일 (화) 12: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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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팔마비
순천팔마비.jpg
대표명칭 순천 팔마비
한자 順天 八馬碑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95(영동 1번지)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76호
지정(등록)일 1980년 6월 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순천 팔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현재의 팔마비는 1616년 순천부사로 부임한 이수광이 지역의 옛 자취를 찾다가 고려시대 최석 부사의 선정에 관한 내용을 알고 지역의 유림들과 함께 1617년에 세운 비석이다.

최석 부사는 고려시대 사람으로 1278년(충렬왕 4) 승평부사로 부임하여, 1281년 12월(충렬왕 7)에 비서랑의 직을 받아 승평부를 떠나게 되었다.

당시 승평부에서는 관례상 태수가 교체되어 돌아갈 때면 반드시 말 8필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최석이 돌아가 “내가 너의 고을에 수령으로 있을 때 내 말이 새끼를 낳았길래 데려왔는데 이는 나의 탐욕이다. 너희들이 그러한 나의 탐욕을 알고서 겉으로 사양하는 것인가?”하면서 그 망아지까지 주었다. 이로부터 말을 바치는 폐단이 끊어졌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워 ‘팔마비(八馬碑)’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최석의 팔마비는 최석 부사가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떠난 이후, 즉 1281년 12월 이후로 추정되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훼손된 것을 1617년(광해군 9)에 순천부사 이수광(李晬光)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비는 원래 연자교(현 남문교) 남쪽 길가에 있었음을 조선 후기 옛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930년 도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1977년 8월에 비의 보호를 위해 비각을 세웠다.

영문

Palmabi Monument, Suncheon

This monument was erected to honor the benevolent governance of Choe Seok,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In 1278, Choe Seok was appointed Local Magistrate of Seungpyeong (today’s Suncheon area) and served his post until 1281. At that time, there was a strictly observed custom in Seungpyeong, in which at the end of the magistrate's service, the local people presented him with eight horses. When the locals presented eight horses to Choe Seok, not only did he return the horses, but also sent a colt that his own horse had foaled while he was serving as magistrate. After this, the custom was abandoned and residents erected a monument named Palmabi, meaning "Eight Horse Monument," to honor the meritorious deeds of Choe Seok.

The monument was presumed to originally have been erected after Choe Seok left his post in 1281, but it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7. In 1617, it was erected again by Local Magistrate Yi Su-gwang.

According to the old map of the Suncheon area drawn in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original location of the monument was to the south of Nammungyo Bridge, but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30 due to road construction. In 1977, a protective pavilion for the monument was built.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고려 후기의 문신인 최석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최석은 1278년 승평(오늘날의 순천 지역) 부사로 부임하였고, 1281년까지 재임하였다. 당시 승평에서는 부사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반드시 말 8마리를 주는 것이 관례였고, 이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최석에게 말 8마리를 보냈다. 그러나 최석은 선물로 받은 말과 승평에 있을 때 자신의 말이 낳은 망아지까지 총 9마리의 말을 돌려보냈다. 이때부터 말을 바치는 폐단이 없어졌고, 주민들은 그의 공덕을 기려 비를 세우고 ‘팔마비’라고 이름하였다.

이 비석은 최석이 승평을 떠난 1281년 이후에 처음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1597년 정유재란 때 훼손되었다. 1617년 부사 이수광이 최석의 선정을 기리며 다시 세웠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순천 지역 옛 지도에 따르면, 이 비석은 원래 남문교 남쪽에 있었으나, 1930년 도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비각은 1977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