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달전재사
포항 달전재사 Daljeonjaesa Ritual House, Po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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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포항 달전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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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Daljeonjaesa Ritual House, Pohang |
한자 | 浦項 達田齋舍 |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새마을로766번길 59 (연일읍) |
지정(등록) 종목 | 시도민속문화재 제143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0월 2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포항 달전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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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포항 달전재사는 승려들이 거주하였다고 전해지는 건물이다. 현재는 조선시대 초기 동방 4현(조광조,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의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의 묘를 관리하고, 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재실로 쓰고 있다. 재사에서 서쪽으로 약 70m 떨어진 언덕에는 이언적 부부를 비롯한 부모, 동생 등 일가의 묘가 있다.
이언적은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를 거쳐 중종 25년(1530)에 사간이 되었다. 그러나 김안로 등용에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김안로가 물러난 뒤에 복직하여 홍문관교리, 직제학을 지내고, 전주부윤으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명종 2년(1547)에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기고 생을 마쳤다.
포항 달전재사는 간결하고 절제된 구조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규모나 ㅁ자형 평면 구조, 공간 구성, 출입 동선 등으로 다른 재실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영문
Daljeonjaesa Ritual House, Pohang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Yi Eon-jeok (1491-1553), a civil official and one of the most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The tomb of Yi Eon-jeok is located in his family cemetery about 70 m to the west, together with the tombs of his wife, parents, and siblings.
Yi Eon-jeok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14 and served various government posts. In 1532, he was temporarily removed from office after being involved in political strife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in Gyeongju to stay in this house. In 1537, he was reinstated and served as minister of personnel, minister of rites, and minister of punishment. In 1547, he was expelled from office again during a literati purge and was exiled to Ganggye in Hamgyeongbuk-do (in today's North Korea). After this, he devoted himself to studying and teaching, and also wrote important books on neo-Confucianism. His honor was posthumously reinstated in 1556.
It is said this building was originally constructed as monks' residence in the early 15th century. Unlike typical ritual houses, this house features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and an entrance on the front left of the building, which are rarely seen in other ritual house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의 대가인 이언적(1491-1553)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곳에 이언적 부부를 비롯한 부모, 동생 등 일가의 묘가 있다.
이언적은 1514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1532년 정쟁에 휘말려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고, 고향인 경주 지역에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1537년 관직에 복귀한 이후로는 이조, 예조, 형조의 판서를 역임하는 등 요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0년 뒤인 1547년 또다시 정쟁으로 인한 사화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함경북도 강계(지금의 북한 지역)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학문 연구에 전념했고, 많은 문하생을 길러냈으며, 중요한 저술을 여럿 남겼다. 1556년 사후 신원되었다.
이 건물은 원래 15세기 초에 승려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고 전해진다. 건물 전면 왼쪽에 있는 쪽문을 통해 출입하며, 오른쪽에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는 등 일반적인 재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
- 인물 설명은 경주 독락당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