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 정려
장윤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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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장윤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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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潤 旌閭 |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서평리 400-6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75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2월 1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장윤 정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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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려(旌閭)란 나라에서 충(忠), 효(孝), 열(烈)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마을의 입구나 집 앞에 세운 붉은 문이다.
이 정려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장윤(張潤, 1552~1593)장군의 업적을 기리고자 1649년(인조 27)에 세운 것이다.
장윤 장군은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발포만호와 사천현감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함양, 개령, 성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593년(선조 26)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하였고, 이후 충의공(忠毅公그)의 시호(諡號)를 받고, 병조참판에 추증(追贈 : 죽은 뒤에 벼슬을 높혀줌) 되었다.
장윤장군과 관련된 유적으로 위패를 모셔놓은 정충사(전라남도기념물 제232호)가 순천시 저전동에 있고, 충의공의 시호를 알리기 위해 승주읍 서평리에서 서면 대구리로 이어지는 길을 ‘충의공로’로 이름 지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정려각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장윤(1552-159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장윤은 순천 출신으로, 158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사천현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지역에서 왜적에 대항하였다. 1593년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군사 200여 명을 동원하여 참전하였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후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충의’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49년 정려가 내려지고 정려각이 지어졌다. 순천 정충사(전라남도 기념물 제232호)에 장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